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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거울 뉴런

프리랜서 글쟁이는 나쁘지 않은 직업이다.  물적자본 없이 일을 할 수 있어 좋다.  꼭 필요한 책은 구입해야 하지만 공공도서관에서 빌리면 되고, 온라인으로 거저 얻을 수 있는 자료도 많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도 있다. 일이 없을 때는 책을 끼고 빈둥거려도 괜찮다. 누가 시키는 일을 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주제를 마음 내키는대로 쓸 수 잇는 것도 좋다.  어려운 점은 수입이 불안정하다는 것 하나뿐이다. 어쨌든 나는 글쓰기가 좋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 일 자체가 주는 만족감 때문이다. 무엇이든 쓰려면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 느껴야 한다.  쓰는 일은 비우는 동시에 채우는 작업이다. 배움과 깨달음이 따라온다.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모르고 있던 것을 새로 알게 되었을 때 좋은 문장 하나를 쓰고 혼자 감탄하면 뇌에서 도파민, 세로토닌이 대량 분비되는 것 같다. 좋은 글을 쓰면 좋은 평판을 얻는다. 게다가 세상과 유대를 이어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정신적, 정서적으로 교감을 할 수 있다면, 나이가 더 들어도 일을 할 수 있다. 

 

내게 정치는 내면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소모하는 일이었다.  이성과 감정, 둘 모두 끝없이 소모되는 가운데 나의 인간성이 마모되고, 인격이 파괴되고 있음을 매일 실감했다. 글쓰기는 지성과 영혼을 건드리는 작업이지만, 정치는 국가권력을 다루는 사업이다. 국가권력의 본질은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간주되는 폭력이다. 권력이 있기 때문에 정치는 글쓰기와 달리 거의 언제나 살벌한 대결과 가시 돋힌 공격, 분노, 경쟁심, 질투, 굴욕과 같은 감정의 격동을 동반한다. 내 인생의 남은 시간동안 나는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  이 삶이 훌륭 한가?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은가? 마음 설레고 일상이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자.

 

사람에게 긍휼히 여기는 마음, 연민, 동정심  또는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공감하고 반응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굳히 논증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모든 감각기관은 각자의 몸에 있다.  모든 자극은 물리적 실채가 있다. 사람의 감각기관은 물리적 실체가 있는 자극에 반응한다. 우리 감각기관은 타인이 감각기관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낀다. 나는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아이들에게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한 달에 26시간을 일하고 6만원을 벌었는데 야학학생들은 250시간 넘게 일하고도 2만 3천원을 받고 있었다.  비록 본의가 아닐지라도 타파해야 할 불평등과 사회악에 기대어 쉽게 사는 기득권층이 된 기분이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내 문제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왜 내가 분노와 슬픔과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가?  타인의 고통이나 기쁨에 공감하는 능력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본능이다.  사상은 계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두뇌에서 만들어진다.

 

인간의 대뇌피질에는 특별한 기능을 가진 신경세포가 있다.  이것이 타인의 고통이나 기쁨에 감응하게 만든다.  과학자들이 '거울뉴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간은 다른 모든 종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타 행동을 한다. 동물들은 보통 유전자를 공유한 다른 개체에 대해서만 이타적행동을 한다. 새끼를 돌보는것이 대표적이다.  인간은 유전적 근친성도 없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거울뉴런을 처음 발견한 인물은 이탈리아 파르마대학 소속 생리학 연구소 소장 자코모 리촐라티로 알려져 있다.  그는 원숭이의 대뇌피질에 정교한 측정 장치를 연결한 실험에서 특정한 신경세포가 특정한 행동을 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리촐라티를 놀라게 한 것은 다른 원숭이가 땅콩을 집으러 가는 것을 보기만 해도 그 원숭이의 해당뉴런에서 신호가 발사된다는 사실이었다.  리촐라티는 연구대상을 인간에게 확장한 결과 사람에게도 타인을 모방하고, 타인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하는 거울뉴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거울뉴런 덕분에 갓 태어난 아기는 부모의 표정을 모방할 수 있다. 이것이 있기에 아기는 사람들과의 감정적 접촉과 교류를 통해 상호이해와 연대 감정을 획득한다.  이기적 욕망과 배타적 경쟁이 자연선택이라는 생물학적 진화 과정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생존하는 데는 사회적 결속과 유대, 사회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을 이기는 능력뿐 아니라, 타인과 쉽게 공감을 이루어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타인의 기쁨 뿐만 아니라 아픔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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