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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진보의 생물학

일과 놀이와 사랑만으로는 인생을 다 채우지 못한다. 그것만으로 삶의 의미를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며, 누릴 가치 있는 행복을 다 누릴 수 없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善을 이루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용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공동선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이러한 연대가 이루어 내는 아름답고 유쾌한 변화를 '진보'라고 이해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 타파 또는 극복하는 것만이 진보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진보를 불합리한 제도와 물질의 결핍,  낡은 사고방식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운 존재로서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나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법을 좋아한다.  생물학적 접근법에 따르면 '진보주의'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이다.  생물학적으로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진화가 인간에게 설계해 놓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가족과 친척이 아닌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자원을 자발적으로 내놓는 것은 기나긴 생물학적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새롭게 나타난 행동방식이다.  이것 역시 진화의 산물이긴 하지만 혈연집단에 대해서만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동물 행동 일반과 비교하면, 새롭고 덜 자연스러운 것임은 분명하다.  인간의 몸은 매우 안정적이었던 그 시대의 생활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유리하도록 최적화 되었다.  문명 발생 이후 인간이 생물학적 대진화를 겪었다는 증거는 없다.  이것은 우리가 수렵채집 시대에 만들어진 몸과 뇌를 가지고 인터넷의 시대를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많은 다이어트 방법중 실컷 먹으면서 감량하는 구석기 다이어트라는 것이 있다.  이 방법은 음식 열량은 따지지 않는다. 육류, 해산물, 달걀, 견과류, 과일은 마음껏 먹는다.  하지만 곡물, 콩, 감자, 설탕, 전분, 가공식품, 유제품은 먹지 않는다.  우리 몸의 세포는 사바나 시대 식단에 최적화 되어있다는 것이다.  탄수화물 중심의 식단은 진화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1만년 전은 유전자의 적응과 생물학적 진화가 일어나기에는 너무 짧은시간이다. 따라서 날씬하고 건강한 몸을 갖고 싶으면, 구석 시대 조상들이 먹던 것과 같은 것을 먹어야 한다.

 

신체 장기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예민한 것이 뇌이다.  몸 전체가 그런 것처럼 뇌도 사바나 시대 생활환경에서 생존하는데 적합하도록 최적화 되어 있다.  현대인들도 본능에 따라 끝없이 경계선을 긋고 울타리를 세운다. 혈연의식, 애향심, 동문의식, 애국심은 집단내부 이타주의 표현이다. 이 본능이 외부에 대해서 적대적인 형태로 표출되면 지역차별, 학벌주의, 외국인 혐오증, 호전적 침략주의가 된다. 유전적 친족과 호혜적 교환행위를 하는 이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모르는 사람들이다. 자연은 생물학적 진화과정에서 유전자를 공유하거나 지속적으로 호혜적 상호교환을 반복하는 적은 수의 타인을 위해서만 사적자원을 자발적으로 내놓도록 인간의 뇌를 설계해 놓았다. 진보는 서민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부자증세를 찬성하지만 보수는 반대한다.  진보는 외국인 노동자 권리와 문화적 다양성을 옹호하지만 보수는 내국인의 이익과 민족문화를 중시한다. 진보는 동성애에 대해 너그럽지만 보수는 혐오한다. 진보는 전쟁을 반대하고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옹호하지만, 보수는 부국강병을 좋아하고 외부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선호한다.

 

진보는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 권익보호를 매우 강조하지만 보수는 덜 그렇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국가와 사회가 책임을 강조하는 반면,  보수는 개인과 가족의 책임을 중시한다.  국가는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간주 되는 폭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주체여야 한다. 살인범에 대한 복수도 국가가 대신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형제도이다. 부당하게 사람을 죽인 흉악범의 인권을 거론하면서 그들을 가두어 놓고, 피해자 유족의 세금까지 포함된 나랏 돈으로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진화적으로 익숙한 것,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 보수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사형제도를 옹호하며 사형집행을 지지 한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일까? 왜 일부 사람들은 진보적일까? 진보주의 그 자체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임이 확실하다. 생활환경은 변한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필요하다. 모두는 아니라도 누군가는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행동을 해야만 한다.  진화적으로 전혀 새롭지 않은 일을 하는 능력에는 일반 지능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지능이 높은 사람은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먹이를 확보하기 위한 생존경쟁과 후손을 퍼뜨리기 위한 성선택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의 능력이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데도 경쟁에서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의 격차가 너무 크다치열한 경쟁이 주는 스트레스가 삶을 옭아맨다. 사람들은 경쟁의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사회의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함께 연대하고 있다.  사회의 진보적 변화는 피지배 계급의 궐기와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그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며, 그 계급에 속한 사람만이 진보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노동자와 농민 등 노동계급의 모든 투쟁이 다 진보적인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투쟁할 경우, 그 투쟁의 주체가 누구이든 굳이 진보라고 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이익 투쟁일 뿐이다. 공무원 노조가 공무원임금 개혁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기업 노동조합 사내 하청 또는 파견이라는 명분아래 부당한 차별과 착취를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임금손실을 감수하면서 투쟁한다면,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것이다. 전교조나 언론노조가 사적 자원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조합원이 아닌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어떤 땅부자, 주식부자가 부자감세 철회와 종부세 부활을 지지한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다.  진보주의는 만인의 것이다.  누구든 유전적으로 무관한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을 기꺼이 내놓는 자발성을 발휘한다면 진보주의자다. 공감을 표현하기 위해 돈만 내는게 아니다. 사람들은 시간, 건강, 열정과 같은 비금전적 생활자원을  내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바친다. 하지만 사람은 그 무엇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누구도 타인에게 어떤 이념이나 공동선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느낀 만큼, 그리고 자기가 할 수 있고 또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참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타적 본성, 공감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나는 연대라고 부른다. 연대는 일, 놀이, 사랑과 더불어 삶을 의미있고, 존엄하고, 품격있게 만드는 제 4원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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