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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신념의 도구가 되는것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많은 것들이 자유를 박탈하고, 속박하고, 훼손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살기 힘들다.  살아가는 데는 물질적 자원이 필요하다.  이것이 부족하면 자유가 제약된다.  불합리한 제도 또한 자유를 박탈하고 훼손한다. 사람은 불합리하고 낡은 생각에 얽매여 행복한 삶과 의미있는 인생을 스스로 훼손하기도 한다그렇게해서 삶의 주체가 아니라 무엇인가의 도구가 된다.  실현할 수도 없고 실현해 봐야 별 가치도 없는 망상에 사로잡혀 삶의 환희를 저버린 것이다. 아무 기쁨도 가져다 줄 수 없는 나쁜 감정에 사로잡혀 행복할 기회를 외면한다.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없이 행복한 인생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생각과 느낌은 때로 감옥이 되고, 족쇄가 되고, 독극물이 되어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삶을 파괴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옳다고 믿는 삶의 원칙이 잇다. 그것을 신념이라고 한다. 나름의 신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목표와 방법을 설정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행위의 준칙을 세울 수 있다.  신념은 때로 삶의 그 자체가 된다.  사람은 신념을 위해 살기도 하며 신념을 위해 죽기도 한다.  신념은 단지 머리에 든 생각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 사랑, 놀이가 되고, 아름다운 사회적 연대와 참혹한 국가가 범죄를 만들어 낸다. 신념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은 훌륭한 일인가? 산념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은 훌륭할 수도 훌륭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신념을 위해 살고 죽는 것도 훌륭한 인생일 수도 있지만, 그것과 다른 인생 역시 얼마든지 훌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념에 따른 삶이 훌륭하려면 먼저 그 신념이 훌륭해야 한다. 신념 자체가 훌륭하지 않으면, 그 신념에 따르는 삶도 훌륭할 수 없다.

 

사상이나 이념, 가치관은 완전하지도 않으며 고정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때로 신념을 버리기도, 바꾸기도 한다. 훌륭하게 살기 위해서는 훌륭한 신념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킬링필드로 유명한 폴보트는 '부패한 캄보디아 왕실과 제국주의 프랑스 억압에서 민중을 해방시켜 평등하고,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이상을 품은 혁명가였다. 그는 자기의 이상과 신념이 고결하고 올바르다고 확신했다. 다른 이상과 신념을 가진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목표를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추구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의 신념이 옳기 때문에 그것을 타인에게 폭력을 강요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올바른 이상과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써도 정당하다는 생각은 자신과 타인의 삶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진보주의나 보수주의도 하나의 이론, 철학, 세계관으로 볼 수 있다.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감정 또는 정신적 태도라고 생각한다.  감정이나 정신적 태도는 상대적이다. 어느 것은 옳고 어느 것은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나와 다른 감정을 품고 다른 태도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너그럽게 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선악의 잣대로 모든 일을 판단하게 되면 자칫 삶을 이념에 종속시키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정치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것이다. 스스로 좋은 것이라 생각할지라도 사람들이 원하지 않으면 강제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의 신념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확신의 바탕 위에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쓸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것은 설계오류, 능력부족, 판단착오 등 스스로 책임져야 할 마땅한 이유가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고 더 노력하면, 이런 것을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문제가 없는데 세상이 잘못되어서 또는 단지 운이 없어서 만족스런 인생을 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사태가 간단치 않다. 세상의 부조리와 불운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공평하지 않으며 세상에는 부조리가 널려 있다. 세상은 정글과 비슷하다. 강 건너에 무엇이 있는지 조차 알기 어렵다. 한 걸음 앞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조차 알기 어렵다.

 

불운, 행운, 부조리가 인생에 깊은 골짜기와 높은 봉우리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있다. 헬렌켈러는 중증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의 표본이다.  그녀 만큼 커다란 행운과 불운을 함께 겪은 사람은 정말 흔치 않다.  행운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여 그토록 혹독한 불운을 이겨낸 사람은 드물다.  처음에 헬렌 켈러는 모든 사람, 모든 언론, 모든 정파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이 사회주의자임을 공개 선언하고,  맹렬한 평화주의, 여성주의 활동을 전개하자 보수주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헬렌 켈러는 누군가의 배후 조종을 받고 있으며, 장님이고 귀머거리여서 쉽게 실수를 저지른다고 공격을 받았다. 그런 비난과 모함에 굴복하지 않았다. 여든두살에 찾아든 뇌졸중 때문에 활동을 접을때까지 주어진 시대 환경안에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굳세게 밀고 나갔다. 헬렌 켈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보거나 만질 수 없으며, 오로지 마음으로 느낄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그의 삶이얼마나 아름다운가?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기에 특별해 보인다.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일들은 사방에 널려있다. 세상도 인생도 행운과 불운, 불합리와 부조리로 넘쳐난다삶에는 인과관계를 찾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냥 일어나는 일이고 일단 일어나면 되돌릴 수 없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교만에 빠지지 말라'는  '어둠의 골짜기에 떨어져도 희망을 잃지 말고 기도하라'는 가르침에 공감한다. 종교가 없는 사람으로서 나는 세상의 부조리와 설명할 길 없는 불운을 일어나는대로 받아 들인다.  행운에 대해서는 감사하되 불운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이것이 좋은 방법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내 선택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이는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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