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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품격있게 나이를 먹는 비결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을 누구나 반드시 만나게 된다. 노화는 무엇보다 갖가지 질병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내게 가장 일찍 찾아온 노화는 만성치주염이었다. 노화의 두 번째 징후는 원시였다. 최근들어 느끼는 또 다른 증상은 기억력 손상이다. 나는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도 삶은 똑같이 귀한 것이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자기결정권이다. 자기 힘으로 삶을 꾸려가야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다. 늙어도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원하는대로 인생을 설계하고, 스스로고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몇 가지는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돈, 건강, 그리고 삶의 의미다.  늙으면 일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근력뿐만 아니라 일반 지능과 판단력, 민첩성 집중력이 모두 떨어진다. 은퇴하기 전에 노년기의 소비생활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돈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 저축, 민간노후보험, 주식과 같은 유가증권이나 부동산 보유 등 그 무엇이 되었든 지속적인 현금수입을 가져오거나 손실 없이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자신을 미리 쌓아두어야 한다.

 

노년기에는 만성질병에 걸릴 위험이 크기 때문에 생활비 말고도 더 많은 자산을 비축해 둘 필요가 있다. 노년기 삶의 자기 결정권을 지키려면 되도록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지 않으면 즐겁게 활동적으로 살 수 없다. 일상생활조차 남에게 의지해야 할지 모른다. 건강을 좌우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생활 습관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고 마시고, 잠과 운동을 어떻게 하며,  인간관계와 여가 생활을 어떻게 꾸려야 건강한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조언을 하고 있다.  유전적 요인과 환경, 의료서비스 등은 모두 합쳐야 겨우 생활 습관과 맞먹는 정도의 영향을 미친다. 자기결정권을 지키는 다음 조건은 삶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 놀이, 사랑, 그리고 연대를 계속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면 하는게 최선이다.  평생 명함을 가지고 살다가은퇴해서 명함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경우에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의미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

 

봉사활동도 훌륭한 대인이다. 놀이도 중요하다. 바둑, 등산, 낚시, 당구, 산책...... 그 무엇이든 젊을 때 하던 놀이를 계속하거나 새로운 놀이를 배워야 한다.  노년을 함께 보내는 배우자나 연인, 친구가 있어야 한다. 깊은 정신적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외로움이 찾아온다외로움은 노년기 삶의 가장 무서운 적이다.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홍사중 선생은 아름답게 나이를 먹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일흔 여덟에 쓴 수필집에서 그는 밉게 늙는 사람들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 하면서 거드름 부리기를 잘 한다.

* 없는 체 한다.

* 우는 소리, 넋두리를 잘한다.

* 마음이 옹졸하여 너그럽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낸다.

*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

*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

 

다음과 같이 반대로 한다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

* 잘난체, 아는 체, 있는 체하지 않고 겸손하게 처신한다.

* 없어도 없는 티를 내지 않는다.

* 힘든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 매사에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임하며, 왠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다.

*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신중하게 행동한다.

*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 보다 남의 말을 경청한다.

 

젊었으나 늙어서나 품위있게 사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젊었을 때 품격없이 살았어도 나이들면서 품위를 갖추면 차선이다. 젊어서도 늙었어도 품위없이 사는것은 좋지 않다. 최악은 젊어서 품위 있던 사람이 늙어서 밉상이 되는 것이다.  정체성이 달라지려면 말과 행동이 바뀌는게 당연하다.  나이를 먹는 데도 롤 모델이 필요하다. 내 노년기의 모델은 언론인 리영희 선생님이시다.  그는 자유의 고귀함을 진실과 지성의 위대함을 증명했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도 노년기 롤모델로 삼고 싶은 인물이다. 그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유명한 지식인들의 강의와 논쟁을 구경하면서 사회를 보는 눈을 길렀다. 그는 여든여덟 살에 ‘쇼에게 세상을 묻다’라는 책을 썼다. 나도 내 지성적 자아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능력을 가진 마지막 시간까지 무슨 글이든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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