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문제인과 안철수

누구나 취향에 따라 어떤 정당을 좋아하거나 싫어할 권리가 있다. 내가 보수 정당을 싫어하는 이유는 보수주의가 인간의 여러 본성 가운데 진화적으로 익숙하고,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을 대변하고 부추기기 때문이다. 물질에 대한 탐욕, 이기심, 독점욕, 증오, 복수심, 두려움, 강자의 오만, 약자의 굴종 같은 것이 진화적으로 익숙하고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보수정당의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정당은 인간본성 가운데 진화적으로 새롭고,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것을 대변하고 부추기는 정당이다. 자유, 정의, 나눔, 봉사, 평등, 평화, 생태보호를 추구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새롭고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와 단일 경쟁을 하다가 후보를 양보하고 사퇴했다.  많은 시민들이 그를 주목한 것은 정치적 손익계산에 집착하지 않는 탈정치적 행동 때문이었다.

 

안철수박사는 공정성, 새로움, 유능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이상과 비전, 정책과 아이디어 경쟁이다. 그러나 단지 그것 뿐인 것은 아니다. 정치는 열정과 탐욕, 소망과 분노, 살수와 암수가 부딪치는 권력 투쟁이기도 하다. 나는 그가 권력 투쟁으로서의 정치가 내포한 비루함과 야수성을 인내하고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정치는 연대의 가장 차원 높은 형식이다.  대통령을 목표로 한다면 권력 투쟁을 놀이처럼 즐거운 일로 여기면서 그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높은 지지율은 이런 것과는 관계가 없다. 그것은 그저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지표일 뿐이다.  인기란 아침 안개와 같은 것이어서 저 혼자 밀려왔다 때가 되면 저 혼자 녹아 없어진다. 나는 우리 정치가 이미 산업의 단계로 진화했다고 생각한다.

 

직업 정치인은 비즈니스맨이 되었다. 어떤 산업이든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자의 선호가 시장을 좌우한다. 정치시장을 양분해 과점체제를 형성한 새누리당과 민주당 두 공급자가 소비자의 선호를 조작하고 지배한다.  안철수 박사는 두 정당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을 결집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정치시장의 80%에 육박하는 두 거대정당의 시장점유율을 무너뜨릴 의지나 계획은 보여주지 못했다.참여정부시기와 노무현 대통령 서거전후 벌어진 일들과 관련한 내안의 미움, 분노, 원망, 두려움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검사들이 미웠다.  언론사 성향을 불문하고 모든 기자들이 원망스러웠다. 민심 또는 여론이라고 하는 세상의 변덕이 무서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온하고, 강인하고,  국민과 민주당 당원들 사이에서도 안티가 매우 적다. 그러나 1470만 표를 얻고 낙선했다. 민주당은 장점과 단점이 있는 정당이다. 온건한 자유주의 성향의 진보적 정책 노선과 튼튼한 지역기반은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민주당 최대 약점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정치 문화라고 생각한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크게 다르면서도 많이 닮은 정치인이다. 두사람은 삶의 역정과 전문분야가 크게 다르다. 정책 노선도 두 사람 모두 진보적이며 온건하다. 가장 크게 닮은 점은 욕망이 아니라 도덕과 대의에 발을 딛고 정치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정치를 직업삼아 살려고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위해서 정치를 한다. 

 

'일이 즐겁다'는 것은 목표를 이루었을 때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일을 하는 구체적인 과정 그 자체가 즐겁다는 뜻이다.  나는 정치의 일상이 즐겁지 않았다.   예전에 낸 책에서 정치를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정치의 일상이 요구하는 비루함을 참고 견디는 삶에서 벗어나  일상이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야수의 탐욕과 싸우면서 황폐해진 내면을 추스르고 발버둥 치는 사람이 아니라, 내면의 의미와 기쁨으로 충만한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정치적 욕망의 화신이라는 세상의 비난에 맞서  내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싸움이 과연 가치가 있는 일인지 의심한다. 왕의 심기를 살피는 신민처럼 변덕스러운 여론을 언제나 최고 진리로 받아들여야하는 정치인의 직업윤리가 너무 무거운 짐으로 여겨졌다. 목적 의식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위선으로 보였다.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삶의 존엄을 해치는 것이  정말 훌륭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기쁘게 연대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