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고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려면 꾸준히 일을 해야 한다. 아무 직업도 없이 놀기만 하면 자부심을 가지기 어렵다. 일할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 사회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모든 직업은 저마다 가치가 있다. 사람들은 사실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귀천을 구분하는 기준이 분명치 않다. 돈을 많이 번다고 고귀한 건 아니다. 인기 있는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옳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최고로 통한다. 하지만 돈을 무엇이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이 아주 없으면 행복해지기 어렵다. 생명활동의 기본은 먹이 활동이다. 인간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분업사회에서는 자기손으로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누구든 자기가 먹는 것 모두를 직접 생산할 수 없다. 제조업과 서비스업도 필요하다. 먹이 활동에 성공하려면 남에게 무언가 유용한 것을 주어야 한다. 기업에 취직해 노동력을 제공하든지 아니면, 자기가 사업을 해서 고객이 원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해서 안정적으로 화폐를 획득할 때, 우리는 그 일을 '직업'이라고 한다.
모든 산업에는 자본가가 있다. 자본가는 생산설비를 소유한 사람이다. 생산 활동을 지휘하는 사람을 경영자라고 한다. 자본가와 경영자가 같은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임원은 아니지만 직원을 지휘하는 관리자가 있다. 단순한 업무를 맡는 사람도 있고 전문기능을 보유한 기술자도 있다. 우리나라에 직업이 11655개 있다. 직업의 종류는 해마다 수백개씩 늘어난다. 직업이 이렇게 많은 것은 사회적 기술적 분업때문이다. 어떤 직업을 원할 수는 있지만 원한다고 해서 그 직업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사람들은 어떤 직업을 원할까?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일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은 아니다.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그저 생계 유지 수단을 상실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적 자존감과 삶의 의미를 파괴한다. 그러나 직장이 있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해서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직업에서 돈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만족을 추구하며 인간적 존엄과 품격을 실현하려고 한다.
직업만족도 조사가 있었다. 그 직업의 사회적 기여도, 직업의 지속성, 발전 가능성, 업무환경과 시간적 여유 등을 고려해 당사자들이 자기직업에 얼마나 만족하는지를 평가한 것이다. 톱10은 초등학교 교장, 성우, 상담전문가, 신부, 작곡가, 학예사, 대학교수, 국악인, 어나운스, 놀이치료사 등이다. 한의사, 대학교 총장, 교사, 세무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판사, 화가 등이 10위에서 30위 사이에 있다. 의사와 검사는 100위권 밖에 있다. 그런데 왜 의사나 검사가 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어쩌다 이런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까? 좋아서 선택한 사람도 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정말 하기 싫지만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없어서 그 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이 선호하는 열가지 직업은 교사, 공무원, 경찰, 간호사, 회사원, 기업 CEO, 의사, 요리사, 사회복지사, 생명과학 연구원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모가 선호하는 자녀 직업은 공무원, 교사, 의사, 간호사, 경찰관, 회사원 순이었다.
진로 결정과 관련하여 학생과 학부모들은 모두 소질과 적성에 압도적인 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직업능력을 키우기 위해 대학전공을 선택할 때 결정적인 것은 학업성적이다. 이렇게 학과와 관련된 직종의 평균 소득, 안정성, 사회적 평판과 관련되어 있다. 적성과 소질, 자아실현, 삶의 의미 이런 것들은 후순위다.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일까? 사람들은 안정되고 근무환경이 좋고, 돈을 벌고, 남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선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 그 자체가 즐겁게 느껴지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여든 살의 스위스 남자가 자기 인생을 기록해 통계를 냈다. 그는 21년 동안 일을 했다. 잠을 잔 시간은 26년이었다. 밥을 먹는데 6년을 썼다. 사람을 만나고 기다리느라 보내 시간은 5년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 남자들이 일하는데 쓰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길것이다. 출퇴근에 들어가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더 길어진다.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이상을 일하는데 쓴다고 보면 될 것이다. 만약 일이 즐겁지 않다면 그것은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다.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남들 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최소한 밥은 먹고 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즐겁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면 인생은 처음부터 절반은 실패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즐겁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괴롭지는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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