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킹박사는 최첨단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았다. 뇌파를 활용해 생각을 읽어내는 장치를 개발하는 미국 의료기 회사의 임상실험에도 참가했다. 우주의 기원과 역사를 이해하고 우주의 미래를 탐색하려는 지적 호기심, 깨달음의 즐거움, 자기가 알게된 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기쁨, 이런 것들이 그의 삶을 밀고나간 동력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은 존엄을 지키기 위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존엄이란 무엇인가? 이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디그니타스dignitas'이다. 존엄은 일상 언어생활에서는 '존경과 고귀함'을 의미한다. 칸트에 따르면 존엄한 것은 가치를 따질 수 없다. 존엄성의 필수 조건은 자유의지다. 살든 죽든 인간의 존엄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선택의 기초가 바로 당사자 자유의지이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는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임을 인식하면서 원하는 사람을 설계하고, 그 삶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밀고나가는 정신의 태도와 능력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철학자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죽는 것 역시 자기방식대로 죽는 것이 바람직하다.
칸트는 이 규칙을 이성이 내리는 '정언명령'이라 했다. 칸트의 도덕법은 두 가지다. 첫째로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보편적 법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준칙이라야 한다. 둘째 나 자신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인간을 절대로 단순히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동하라. 여기서 문제는 그런 행동 규범을 세우고 지키는 사람의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오로지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는 신념에서 했다면 정언명령에 부합한다. 라몬 삼패드로는 스페인 남자였다. 그는 스무다섯살에 물에 빠져 경추가 부러졌다. 30년동안 똑같은 하루를 살았다. 그는 사지마비 장애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지가 마비된 삶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자유의지에 따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끝내고 싶다' 신성한 것은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의 존엄성이며 자유로운 판단에 따라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삶의 의미는 살고 사랑하고 죽을 자유에서 비롯된다. 신의 뜻을 구현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사지가 마비되면 자살한다는 준칙은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없다. 라몬이 제안한 준칙은 ‘기쁨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로지 벗어날 수 없는 고통만 남은 상황에서, 그 고통을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데 스스로 아무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자유의지에 따라 죽을 권리를 인정해 주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많은 것들로 삶을 채운다. 그런 것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일, 놀이, 사랑, 이념, 지식, 돈, 명예, 권력..... 무엇이든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고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내 삶에 주는 기쁨과 의미를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무엇으로 인생을 채우고 있는가? 그것이 당신의 삶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는가? 살아있는 순간마다 당신은 기쁨을 느끼는가?
경찰을 정년 퇴직한 사람이 형사 사건 수사 실무 방법론에 대한 책을 냈다, 그가 행동으로 보여준 형사사건 수사 실무 방법론은 별게 없었다. 나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그 이름도 얼굴도 잊지 않았다. 그들은 피의자가 들어오면 일단 두어시간 몽둥이로 발바닥을 팬다. '다 불어' 외치며 이것은 기본 사양이다. 욕설은 옵션이다. 상부의 요구에 맞는 수사 결과를 만들려면 자백을 받아야 한다. '억울한 것 나도 알아, 나도 마음이 아파. 우리도 힘들어 그냥 불러주는 대로 쓰고 가라' 이러는데 뭘 더 어찌하겠는가? 그들의 최종 표적은 김대중씨 였다. 김대중이 복학생에게 돈을 주어 대학생 시위를 배후 조종했다 .김대중은 북한 간첩과 관계있다. 김대중은 소요사태를 일으켜 국가를 전복하고 정권을 탈취하려고 했다. 전두환 일파는 이런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나는 1980년 밤, 학교에서 붙잡힌 뒤에 두달을 그렇게 보냈다. 헌병들도 군기를 잡는다며 근무자가 바뀔때 마다 팼다. 수사관은 몽둥이로 팼지만 헌병은 손과 발을 팼다. 잠시라도 매를 피하려면 진술서를 써야 했다. 나는 계엄사 합수부 조사실에서 태어난 글쟁이라 할 수 있다. 징년 1년을 채우고 나오자 선배들이 수시로 나를 불러 성명서를 쓰는 일을 주었다.
글쓰기에도 재능이 필요하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한다. 글을 잘 쓰려면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한다. 나는 박경리선생의 '토지' 1부를 다섯 번 넘게 읽었다. 조정래 선생 '태백산맥'과 황석영의 '장길산'도 여러번 읽었다. 어휘가 풍부하고 문장이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반복해서 읽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누구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수첩에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것을 묘사하거나, 머리에 스치는 상념들을 붙잡아 메모했다. 내가 쓴 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것이 ‘거꾸로 읽는 세계사’였다. 한번도 꿈꾸어본적 없는 글쟁이가 되었으니 인생은 역시 계획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 폐 끼치지 말고 살자’. 이것이 내 좌우명이다. 남에게 폐끼치지 말고 살려면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글을 쓴다. 나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생업만이 아니다. 글을 써서 내 생각과 내가 가진 정보를 남들과 나누는 행위, 그 자체가 즐겁고 기쁘다. 글쓰기는 그런 면에서 놀이이기도 하다. 제대로 의미가 있으려면 내가 쓰는 글이 쓸모가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내 글에서 재미에 덧붙여 깨달음이나 감동까지 얻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나는 많이 읽히는 동시에 훌륭한 책을 쓰고 싶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읽고,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고 써야 한다. 열심히 하면 훌륭한 글쟁이는 못되더라도 최소한 쓸모있는 글쟁이로 남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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