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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 마셜 B. 로젠버그, 캐

우리 자신과 연민으로 연결하기 (1)

우리가 내면에서 스스로에게 폭력적이면 다른 사람에게 진정으로 연민을 느끼기 어렵다. 나는 아이가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알게 되길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점점 잃어가면서도 잃어버리는 것 조차 모를 테니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특별한 존재라는 의식을 잊어가고 있는 것을 크게 걱정하고 있다.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자신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되어 삶의 원천인 신성한 에너지와의 연결을 잃게 된다. 스스로를 대상으로- 그것도 결점 투성이인 대상으로- 보도록 훈련받아 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폭력적으로 대하게 되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상황과 조건들을 자신의 삶을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이해하고 선택하는 것을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

 

'네가 하는 일이 항상 그렇지 뭐, 넌 너무 이기적이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 거나 나쁘다'는 식으로 교육받아 왔다. 이러한 자책 속에는 그로 인해 마땅히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알고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배우기보다는 자기 비하에 빠지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수치심은 자기 혐오의 한 형태이고, 거기서 나온 행동은 자유롭지도 즐겁지도 않다. 우리가 더 많은 친절과 배려로 대하려 할 때도, 그 행동들이 수치심이나죄책감에서 나왔다는것을 사람들이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이 진정으로 삶에 기여하고 싶은 순수한 욕구에서 나왔을 때만큼 고마움이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쓰는 말중에 수치심과 죄책감을 일으키는 엄청난 힘을 가진 말이 있다.  ' -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만 했어'  우리가 이런 말을 쓰개 되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잃게 된다, 사람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강요를 받으면 저항하게 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보면 한심해. 무슨 방법을 찾아야 해. 정말 담배를 끊어야 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그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말은 계속하면서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저항하고 있다. 밖에서 오든 안에서 오든 우리는 '해야만 한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 같은 강요에 굴복하게 되어있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이런 강요에 복종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 행동에는 우리 삶에 생동감을 주는 즐거움이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가리켜 잘못됐다거나 나쁘다고 할 때, 우리가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뜻은 ‘그 사람의 행동이 우리의 욕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라는것이다민약 비판하는 상대가 자신일 경우 우리가 실제로 말하는 의미는 나는 지금 나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조화롭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고 있는지, 그렇다면 또 얼마나 잘 충족되고 있는지하는 측면에서 우리 자신을 평가하도록 배운다면 우리가 그 평가로부터 배울 수 잇는 가능성이 훨씬 커지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평생동안 받은 학교 교육과 사회화 때문에 매순간 순전히 자신의 욕구나 가치를 중심으로 생각하도록 마음을 훈련하는 것은 우리 대부분에게 너무 늦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판단하는 말들을 느낌과 욕구로 바꾸어 듣는 법을 배웠듯이 자신을 판단하는 말을 할 때마다 곧바로 그 말들의 이면에 있는 욕구에 관심의 초점을 두도록 스스로를 훈련할 수 있다.  '봐, 또 잘못했잖아!' 라며 스스로를 질책하는 자신을 보았을 때 즉시 생각을 멈추고 ‘이 같은 판단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나의 충족되지 않는 욕구는 무억인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볼 수 있다.  '또 잘못했잖아'라며 자신을 책망할 때 느끼는 수치심, 죄챡감 우울 대신 여러 가지 다른 느낌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슬픔, 좌절, 실망, 두려움, 애잔함 등이 우리가 이러한 여러 느낌을 가지고 태어난 데에는 한 가지 목적이 있다. 이런 느낌들의 목적은 우리가 원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추구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NVC에서 말하는 애도는 우리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했을 때,  그로 인해 생겨난 충족되지 않은 욕구와 느낌에 온존히 연결하는 과정을 말한다. 의식의 초점이 욕구에 맞추어져 있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창조적인 가능성을 찾아가게 된다. 지금 후회하고 있는 그 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던 자신의 그 부분에게 관심을 돌려 다음과 같이 물어본다. ‘지금 내가 후회하는 그 행동을 했을 때, 그때 나는 어떤 욕구를 충족하려고 했던가? ’ 우리가 자신을 공감으로 들으면 마음깊은 곳에 있는 욕구를 들을 수 있다. 자기 용서는 이런 연민으로 연결되는 순간에 생겨난다.  애도와 자기 용서 과정은 우리를 자책과 우울에서 자유롭게 하여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게 한다. 매순간 욕구와 연결할 때 우리는 그 욕구들과 조화로운 방법으로 욕구들을 충족할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키우게 된다.

 

애도와 자기용서에 더하여 내가 강조하고 싶은 자기 공감의 또 다른 면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 뒤에 있는 에너지다. '내가 즐겁지 않은 일은 하지마라'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를 아주 과격하거나 심지어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자기연면의 중요한 한 형태는 두려움,죄책감, 수치심, 의무감 등에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삶에 기여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즐겁게 할 수 있는 일도 두려움, 죄책감, 수치심, 의무감으로 한다면 그 즐거움을 잃게 되고 결국에는 그 일 자체에도 저항감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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