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그 말애 수긍하여 그를 가까이 하게 된다. 이렇게 믿음이 일어나 그들이 만든 종교에 발을 딛는다. 고전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지금 다시 들어도 우리에게 안온함을 준다. 사람 마음 바탕에 우리는 누구나 이런 덕성과 지혜가 있지만, 현대 문명 속에 묻혀 사느라 우리는 들어도 가물가물하다. 대부분의 종교는 성인들의 그림자만 지키고, 지키고 있는 것은 현금의 종교다. 성직자가 그 종교의 성인의 얼굴을 대신하고 있지만, 요즘음 그들을 통해 성인의 그것을 만나는 것은 거의 꺼져가는 등불이다. 파우스트의 마왕은 인간의 마음이 진리의 본성을 떠나면 옳은 것을 가장하기도 하고, 좋은 짓을 하면서도 악을 짓는다. 마魔는 한 인간안에서 가자가지 세상 사람이 바라보는 욕망의 형태를 가장하고, 작용하여 나온 것이다. 꼭두각시 놀음이다. 사람들은 이런 세상을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고 왔다갔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성인이 본 뜻을 덮고 악을 싫어하고 선을 좋아하는 쪽에서 시끄럽다. 깨달은 성인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양쪽 세계를 벗어난 지혜인이다. 그들은 대자유 속에 사람을 향하는 지혜가 달린 사랑과 자비만 있다. 善도 생각하지 말고 惡도 생각하지 말라. 생각이 일어난 것이 마음을 떠나 있으면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인연 따라 악과 선이 교차한다. 공자는 이를 '선악개오사善惡 皆悟師 (세상의 착한 일이나 악한 일이 모두 자기 수양의 거울이 된다)'라 하고 도덕 속에 남긴다. 석가가 깨닫고 나서 일체중생이 다 그와 같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다만 사람이 다 갖추어져 있는 마음을 놔두고 이걸 떠난뒤 없는 마음을 만들어 미혹속에 삶이 패턴만 서로 다르게 하고 나온다. 그리고 스스로 만든 것에 짓눌림 당하고 산다. 계급속에 들어가 사람이 지치고 환상 속에 헛꿈을 꾸고 산다. 그러나 깨닫는 이는 '그런 것을 본래 없는 것이다'하고 보여준다. 마음의 눈을 뜨고 사실을 보면 없다.
한계가 있는 세계에 몸을 두고 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이다. 세상 흐름 속에 자기 뜻을 이루고 사는 분들은 대개가 이 물줄기에 합류하여 살고 갔고, 또 살고 있는 것이다. 돈을 다루는 일에 복이 들어오면 그 공이 자신에게 온 것이 아니고, 항상 다른 사람으로부터 임시로 나에게 머물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환경에 따라 악과 선을 만나고 산다. 우리 마음이 일고꺼지는 것에 따라 그 대하는 것이 다르다. 열고 막는 것은 우리 삶이 그런 곳 속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열고 닫고 한느 것이 마음에서 지혜의 일이다. 우리는 악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그 싫어하는 것이 또 다른악이 되어 되돌아옴을 모르고 살기가 쉽다. 선을 먼저 취하여 그 선에 머물면, 그 선 또한 얼마 안가 어리석음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성인들이 만든 종교의 근본 종지는 선악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신앙은 믿음에서 시작하지만 나중엔 이렇게 열고막는 지혜를 요한다. 믿음만 있고 지혜가 적으면 어리석어 지고, 믿음이 없고 알기만 하면 인간은 아만에 젖는다. 법구경에 나오는 말이다. 진리는 믿음 속에 알고, 아는 것 속에 믿음이 있어,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벗어난다. 싫은 마음, 좋은 마음이 사람을 구속한다. 선악은 마음이 일어난 뒤에 경계를 만나 마음이 만든 것들이다. 하늘에 닿아있는 사람의 근본 성은 善에도 속하지 않고 惡에 속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걸 공자는 천명에 닿아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곳에 닿기만 하면 양면으로부터 자유가 된다. 道는 알고 모르고 하는 곳에 있지 않다. 그냥 내가 앉고 서고 하는 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멀리하고 있을 뿐이다. 이 세상은 음陰과 양陽이 교차하는 곳이다. 이곳에 내 몸을 두고 있다. 어느 쪽으로 집착하는, 즉 미혹에 들고 옳고, 그름, 나쁘고 좋은 것에 합류하고 만다. 그리고 일어나고 꺼지는 일만 반복한다. 이쪽 아니며 저쪽에 들어가 있다. 道를 잃은 것이다. 만든 자가 사라 지면 모든 것이 헛 것인 것이다.
가난한 마음속 풍요로움만 있네!
정성 다한 곳에 貪瞋痴 팀,진,치가 녹아 빈집이 되고
오관육근 뿌리 비어 마음만 드러났네.
바람 불고 새소리 있는 곳, 시냇물 소리 또한 道 아닌 것이 없어
청정하고 순결한 눈, 만상이 살아 숨을 쉬네!
* 오관五官은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말한다. '육근(六根)'이란 우리 몸의 구성 요소중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바탕이 되는 부분을 각각의 고유 영역에 따라 눈 · 귀 · 코 · 혀 · 몸 · 뜻이라는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놓은 것을 말한다.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이다. 이를 오관五官을 흔히 육근六根이라고도 하며, 불가(佛家)에서는 고(苦)의 원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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