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산모퉁이를 지나자 넓은 벌판이 한번에 보이듯이 그렇게 온다. 망상을 바탕으로 이해하여 말이 귀중하다고 지키고 있으면 그것은 선의 재앙이다. 발걸음을 멈춰본다. 성인이 내 옆에 있고 진리가 바로 나와 같이 있다. 이제 살만하다. 본시 있는 마음에 의존하면 눈은 밖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안을 보는 것 같기도 할 것이다. 일체의 것을 되는 대로 놔둔다. 인간은 어찌보면 나약한 존재이다. 항상 배우는 삶만 있다. 화두를 들고 궁구하면 언어 이전의 뜻을 알 때가 온다. 깨치면 곧 바로 성인의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 그때부터 실천하는 행이 생활중에 자연스럽게 나온다. ( 언제나 화두를 가지고 있으면 세상 이치는 저절로 알게 된다. 내가 절실한 화두를 가지고 있으면 몸이 저절로 깨닫는다.) 자기에 대한 자발적인 의구심이 일고 그리고 깨달은 이의 말을 믿어서 시작되는 것이다. 우선 자기를 믿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바른 믿음은 깨들은 뒤에 온다. 깨달음은 알고 이해하는 것과 는 다른 것이다. 도는 종교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생활중 평상심 가운데 있는 것이다. (믿으면 깨닫고, 깨달으면 믿게된다. 이러한 연속적인 과정으로 정신적 성장을 한다. 믿어야 하는 존재가 하는 말은 믿게 된다. 성인, 전문가,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 곰곰이 돌아보면 생각해 보라. 스스로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예수의 사랑이 나오고 부처의 자비가 입에서 나온다. 지금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들이 짓는 신을 믿고 있다. 신은 사랑이다. 사랑엔 편벽됨이 없다. 신을 믿는자가 편벽된(닫힌) 성격이 나오면 그것은 그가 짓는 신을 믿고 있는 사람이다. (자비와 사랑은 닫히지 않고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 사랑은 온유하고 오래가고 온전한 것이다. 이기적인 것이 없으며 미혹 속에서 벗어나 있다. 내가 내 안에 있는 불성, 신성을 만나면 만든 마음은 곧 사라진다. 나는 이제 나를 불성 작용하도록 허락케 된다. 내가 신성을 만나면 나는 없어지며 사랑만 있다.
나는 죄인이고 어리석고 보잘것 없다. 그런 사람으로 스스로 폄화 시킨다. ( 내가 남보다 잘낫다고 생각하는 마음, 교만이 항상 문제를 만들고 고를 만든다. 나를 내려놓는 것은 나를 보잘 것 없고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 이해관계와 인연을 내려놓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불성은 우리들이 덮고 있는 어둠을 말하고 풀어준다. 내가 그들 세계에 들도록 말을 한다. 종교는 사람을 위하여 있다. 신이나 부처를 위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중생을 떠나 있는 부처는 없다. 작은 길은 큰 길로 다 통해 있다. 중생의 생각이 부처로 통해 있지만 그것에 집착하고 있는 동안 많은 길이 막힌다. 사람의 본 마음엔 상대가 없는데 내가 만든다. 상대가 다 이 마음에서 인다. 이렇게 알면 훨씬 다툼이 적어진다. 마음에 다툼이 적어지면 본 마음이 작용함을 본다. 이젠 다툼은 어리석음이란 것을 알고 놔둔다. 우선 내가 편안하고 남이 편안해 한다. 불법은 나를 믿는 공부다. (종교는 내 몸 만드는 것을 도운다. 탐욕과 집착으로 가득한 마음을 비워 그 곳에 부처, 예수를 둔다) 놔버리라,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먼저 자신을 믿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내가 나를 돌아보면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면 더 어려워지고, 사람의 몸과 마음은 본능적으로 생성하려 한다. 더 잘해보려하고 더 나아지려고도 한다. 말려든다. 내가 죽을 때 난 나를 볼 수가 있었고 어리석음을 돌이킬 수가 있었다. 내가 지키는 내가 없다. 하려고 하는 노력, 이 얼마나 어리석은 꿈꾸는 짓인가? 자포자기와는 다르다. 자포자기는 더 큰 어둠 속의 어리석음이다. 어찌 자기 마음을 놔두고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에 묶임을 당해 있을까?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냥 두면사라진다) 아직 생각으로 마음을 알고 있으니 마음은 있지만 구름 속에 있다. 오랜만에 집안 일을 마치고 혼자 있다. 찻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으니 절로 한가롭다. 몸과 마음에선 무엇을 기다리는 듯하지만 이젠 별로 할 일이 없다. 할 것이 있을 때는 조금은 분주했는데 할 것이 없으니 이젠 마음만 남는다.
절로 고요하다. (한다는 마음, 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마음이 없으면 일이 없다. 이때 일이 있어도 일이 아니다. 오고 감에 노니며 한가롭다. 범부는 바쁘고 할일이 많다. 성인은 일이 없는 곳에서 일을 한다. 마음이 物이고 물이 곧 마음이다. 그 다음 것들은 사람 스스로가 만든 것들이다. 만들면 지우고 또 만든다. 일어나고 꺼지는 것에 마음을 맡겨 부대낀다. (스스로 괴로움을 만든다) 자기 마음을 놔두고 허상,허명에 나를 둔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푸른 잎을 달고 와준 봄이 나를 뒷마당으로 데리고 간다. 햇빛 밀어붙이는 그늘에 아래서 난 봄의 역사를 더듬는다. 저 꽃잎들이 나오기까지 그동안 어디에 있었을까? 나무줄기에 있었을까? 흙속에 있었을까? 물이 없으면 잎을 피우지 못하고, 빛이 없으면 색깔이 어둡다. 바람이 없으면 흔들리지 못한다. 돌아보면 나 또한 저와 다를까! (잠시 머물다가는 바람, 흘러가는 물)
봄은 겨울 속에 숨어 있다가 온 것일까? 아니 가을속에? 그럼 여름속에? 모든 것이 나의 상념이다. 봄은 그냥 나에게 오는 손님인 것 같다. 그래서 난 차 한잔을 준비하고 맞이했으면 싶다. 지금 저 멀리 바람이 훈훈하게 불어온다. 대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경계를 따라 일어남이니 경계에 마음이 그치면 마음은 조용해진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또 경계를 만나면 또 언제든지 일어난다. 그러나 성품을 경험하면 경계를 대해도 경계 일뿐 마음이 일어난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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