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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煩惱를 끊는 이야기(간화선의 길

나를 밝게 하는 공부(1)

불교를 잘못 시작하면 글만을 배우다가 세월만 다 보내버린다.  글을 알아야 불교를 아는 것 같다. 그러나 글을 알아도 세월만 보낼 뿐 불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부처님은  내마음을 떠난 부처는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나 자신을 못 믿어서 부처를 믿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 말을 믿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다가고 늙음이 와 있다. 글이나 말을 배우는 것 이걸 그치기가 그렇게 어렵다. 불교를 배우지 말라. 자기를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사람을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마음을 아는 이가 스승이다.  글이나 말을 많이 아는 이가 스승이 아니다.  대개 사람은 자기가 어두우면 남의 밝음까지도 어둠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성향이 있다. 마음이 없으면 이 몸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좌선을 하려고 앉아 있는 동안 선을 하려고 든다. 그러나 하려는 그 생각이 곧 공부를 장애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의 성품은 내가 공부 안하고 있을 때도 내 안에 있다.  불교는 자신를 믿어 다시 태어나야 바로 아는 것이 된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불교를 쉽게 풀어 전하려고 많은 지식을 동원한다.  (방편을 동원한다)

 

지혜는 상대를 내려놓게 만든다. 사람 마음에 다툼을 그치게 하고 중생이 부처에 닿아있게 한다.  많은 불교지식은 오히려 부처 말을 바로 믿는데 장애가 될 때가 너무 많다. (지식으로 부처님 말씀으로 판단한다. 분별심을 만든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는 것을 놓아야 한다. (그것을 앵무새처럼 말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교먄하게 하고 공부를 방해한다. )  깨친뒤 경을 보라는 말이 있다. ( 세상이치를 깨닫고 세상 이치에 대한 공식, 도구, 이론을 공부해야 한다)  불교 교리를 인식하여 잘 알고 있으면 사람은 저도 모르게 아는대로 행하려 한다. 지혜자는 알고 난 뒤에 반드시 놓을 줄 안다. 놓는 자는 마음을 만나면 그때부터 정진이 시작된다.  삶 자체가 불교가 된다삶이 무상한 줄 알지만 허무주의 같은 것은 없다. 모든 실상은 드러나되 붙들린 바가 없다.  삼계는 고요하며 어떤 흔적 속에 있지 않다.

 

어설프게 불교교리를 잘못 익히면 전생이 어떻고,  내생이 어떻고 하는 것에 걸려 자기 근본 생명을 소홀히 한다. 살아있는 불교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떠나지 않는다.  내생은 지금을 안 떠나 있다.  지금 가린 것이 벗겨지면 과거, 현재, 미래가 뚫어져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생명 속에 종교가 있다.  화두도 이 생명 속에서 나온다. 오줌 싸고 밥먹고 배고픈줄 아는 데도 부처가 있다. 첨선을 공부하려면 스스로 뜻이 있어야 한다. 이 주어진 삶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잘 살펴보면 지극히 불완전하고 또한 우리가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똑같은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고정관념이 바뀌고 내게 이미 있는 지혜의 문이 드러나면 세상이 다시 봐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나에 의해서 봐지는 것이다. 내가 변할 수 있다면 세상이 변하는 것이다. 내가 변하지 못하면 세상은 나를 제한된 곳으로 끌고 들어가버린다. 그리고 스스로 갇힌다. 그때 우리는 가만히 서서 자각이 필요하다.

 

어느 날 공자가 조카 공멸을 만나 물었다.

‘네가 벼슬한 뒤로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이냐?’ 공멸은 표정이 어두어지더니 대답했다.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나랏일이 많아 공부할 새가 없어 학문이 후퇴했습니다. 둘째 받은 녹이 너무 적어서 부모님을 제대로 봉양하지 못했습니다. 셋째 공무에 쫓기다보니 벗들과 관계가 멀어졌습니다.’

 

공자는 제자 복자천을 만나 같은 질문을 해 보았다. 복자천은 미소 지으며 대답햇다.

 ‘잃은 것은 하나도 없고 세가지를 얻었습니다. 첫째 글로만 읽었던 것을 이제 실천하게 되어 학문이 더욱 밝게 되었습니다. 둘째 받는 녹을 아껴 부모님과 친척을 도왔기에 더욱 친근해졌습니다.  셋째 공무가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우정을 나누니 벗들과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

 

우리들의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것은 큰 허물을 고치지 못해서가 아니라, 성격이나 습관이 잘못되어 나온 작은 약점을 고치지 못한 데서 온다.  자신을 약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인정하자마자 나는 곧 편안해진다.  작은 것이 나를 가리면 그것이 큰 나를 가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