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을 백년으로 생각한다면 자정무렵 예수님이 태어나셨다고 비유해 보자. 사도 바울은 영시 삼십분 직전에 전도를 시작했고, 로마에서 숨을 거두었다. 세시 경까지 기독교는 탄압을 받았는데, 313년에 로마제국 내에서 종교로 공인을 받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일이다. 380년에 기독교는 전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4세기에 로마는 이민족들의 위협과 내부적인 붕괴의 위협에 직면한다. 33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겼다. 이 도시는 이 때부터 제2 로마라고 불렀다. 395년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열되었다. 서로마 제국의 수도는 로마였고, 동로마 제국 수도는 새로이 건설된 콘스탄티노플이었다. 476년에는 끝내 서로마 제국 전체가 멸망했고, 동로마 제국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인들의 손에 함락될 때까지 존속했다.
529년 플라톤이 세웠던 아카데미아가 문을 닫았다. 같은 해에 베네딕트 수도회가 창설 되었고 기독교가 그리스 철학 위에 덮개를 씌우고 그 세력권을 넓혀갔는지 상징하는 해다. 이 때부터 수도원이 교습과 성찰과 명상을 독점하게 되었다. 중세란 원래 서로 다른 두 시대 사이에 있는 시기를 뜻한다. 이러한 표현은 르네상스 시대에 생겨났다.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중세를 고대 문화와 르네상스 사이에서 유럽은 뒤덮었던 천 년의 암흑시대로 여겼다. 지금도 우리는 권위적이고 경직된 것을 가리켜 중세적이라고 하지만 중세를 천년의 성장시대로 간주하는 사람도 많았다. 중세에 이르러 학교제도 생겼다. 1200년경 최초로 대학이 창설되었다.
기독교가 민중속으로 깊이 파고들 때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중세에 도시와 도성들이 건축 되고 민중음악과 민중문학이 생기면서 많은 민족국가가 생겨났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많은 문화적 요소들이 기독교적 관습과 섞이게 되었다. 기독교는 유일무이한 지배적인 세계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서기 400년 이후 백년 동안은 실제로 문화가 몰락했다. 경제와 무역도 쇠퇴해서 사람들은 화폐경제에서 물물교환과 현물경제로 되돌아갔다. 봉건제도란 장원의 영주가 토지를 소유하고, 농노가 생계유지를 위해 영주의 토지를 경작하는 것이다. 인구가 100만이었던 로마가 600년경에 불과 인구 4만밖에 안 되는 소도시로 전락했다. 로마의 정치적 위세는 4세기 말엽에 이미 끝났다. 그러나 로마의 주교가 전체 로마카톨릭 교회의 수장, 즉 교황이 되었다. 고대 로마제국은 차차 서로 다른 세 문화권으로 나누어졌다. 서유럽에 라틴어를 쓰는 기독교 문화권이 로마를 수도로 하고, 동유럽에서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며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는 그리스 정교 문화권이 자리 잡았다. 이 콘스탄티노플은 비잔티움이라는 그리스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로마카톨릭의 중세와 구분해서 비잔틴의 중세란 말을 쓰는 것이다. 반면에 로마제국에 속했던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은 중세에 아랍어를 쓰는 회교 문화권으로 발전했다. 632년 모하메드가 죽은 뒤 중동 지방과 북아프리카 지역은 이슬람화 되었다. 곧이어 스페인도 회교 문화권에 들어갔다. 회교는 메카, 예루살렘, 메디나, 바그다드를 성지로 삼았다. 아랍인들이 고대 헬레니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했고, 그들은 그리스학문의 대부분을 물려받았다. 중세 전반에 걸쳐 아랍인들은 수학, 화학, 천문학, 의학 같은 학문을 이끌어가는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중세 철학자들은 기독교가 진리라는 사실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기독교의 계시를 무조건 믿을 것인지 아니면, 이성적 사유 역시 기독교적 진리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철학과 성서의 관계는 어떤가? 성서와 이성 사이에 모순이 없나? 믿음과 인식은 서로 일치하나?
354년에서 430년까지 산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을 통해 후기 고대에서 초기 중세로 변해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열여섯살때까지 카르타고에 가서 공부를 했다. 카르타고 근처 히포라는 곳에서 주교로 재직하며 말년을 살았다.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그는 여러 가지 종교와 철학적 흐름을 체험했다. 한동안은 고대 마니교도였다, 그들은 세계는 선과 악, 빛과 어둠, 정신과 물질이라는 대립된 원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했다. 청년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은 도대체 어디서 오느냐'는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또 한동안 스토아 철학 영향을 받았는데 스토아 철학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데 반대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학파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았다. 여기서 그는 ‘ 모든 존재자는 신적이 본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접하게 된다. 그는 그리스 철학에서 비롯된 많은 것을 중세로 가져왔다.
그는 '이성이 종교문제에 미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기독교는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신비이기도 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철학이 삶의 모든 문제에 완벽한 대답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을 스스로 체험한 사람이다. 그는 기독교도가 되고 나서 영혼의 안식을 찾았다. 그는 하느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했다. 그리스인들은 '세계가 이미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했고, 이데아란 하느님의 생각안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악을 신의 부재에 기인한다고 했다. 악은 어떠한 자립적 존재도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다. 하느님 창조물은 모두 선한 것이기 때문이다. 선한 의지는 신의 역사이며 악한 의지는 하느님의 역사에서 이탈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인간이 똑같이 이성이 있으니까 똑같은 가능성을 갖는다고 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원 받을 인간이 미리부터 정해져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한 하느님의 나라와 신의 왕국이라는 표현은 성경과 예수의 말씀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역사를 하느님의 나라와 현세 국가가 싸우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하느님 나라는 교회 안에서 분명한 형태로 존재하고, 현세국가는 지상에서 정치적 형태로 존재하는데 로마제국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역사관은 중세 전체에 걸쳐 교회와 국가가 권력을 놓고 싸움에 따라 점점 더 분명해져 갔다.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처음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 반드시 교회에 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사람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를 철학 영역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철학자다. 그는 하느님이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과정을 총체적인 역사라고 했다. 역사는 인간을 교육하고 악을 파괴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아우그스티누스 이래 400년의 세월이 흘렀다.
수도원 학교들이 교육을 독점하게 되었다. 성당부속학교가 세워졌고 대학이 창립되었다. 거대한 성당들이 많이 건축되었다. 이 성당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세워진 것으로 그것을 건축한 자체가 일종의 예배의식 이었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아랍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아랍인들은 중세 전체를 통해 아르스토텔레스 전통을 보존했다. 1200년경 아랍인 학자들이 북이탈리아 영주들의 초청을 받아 그곳에 가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많은 책들이 그리스어와 아랍어로부터 라틴어로 번역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자연과학적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중세 전성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그는 로마와 나폴리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 아퀴노에서 태어났고, 파리에서 대학강사로 일했다. 그는 철학자이고 신학자이기도 하다. 그는 중세 초기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을 기독교화 시켰듯,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독교화 시켰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와 철학은 종종 똑같은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성의 도움을 빌려서 성서적 진리들을 탐구할 수 있다. 아퀴나스는 자연신학적 진리라고 할 수 있는 일련의 진리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에게로 가는 길이 둘이라고 믿었다. 하나는 믿음과 계시를 통한 길이며 또 하나는 이성과 감각을 통한 길이다. 우리는 진리의 한 부분을 이성과 관찰로 얻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신의 존재 혹은 모든 자연의 변화 과정을 진행시키는 최초의 원인이 있어야만 한다는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하느님에 대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는다. 성서와 예수님 말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아퀴나스는 식물과 동물에서 인간, 인간에서 천사, 천사에서 하느님으로 올라가는 실존의 등급을 믿었다. 인간에겐 짐승과 마찬가지로 감각기관을 갖춘 육체가 있었지만, 깊이 생각하는 이성도 있다. 천사는 육체도 감각기관은 없지만, 그 대신 직접적이며 직관적 지성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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