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만물이 생겼다. 그런데 인간은 곧 하느님을 배반했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하느님에게 복종하지 않는 인간의 태도는 성서 도처에 있다.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신이 아브라함과 그의 족속에게 하신 약속을 읽을 수 있다. 후에 시나이 산 위에서 모세 십계명을 얻었을 때 갱신되었다. 이것은 기워전 1200년경 일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다가 하느님 도움으로 돌아왔다. 기원전 1000년 경에 이스라엘에 사울, 다윗, 솔로몬 세 왕이 대를 이어 등장해 이스라엘민족 통일왕국을 이룩했다.
메시아라는 말은 '기름부은자'라는 뜻이다. 종교적으로 볼 때 왕은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중개자였다. 그래서 왕은 하느님의 아들이고, 나라는 하느님의 나라였다. 이스라엘은 약해져서 북부 이스라엘왕국과 남부 유대왕국으로 나누어졌다. 기원전 722년에 북부 왕국은 앗시리아에게 멸망했고, 남부 왕국은 기원전 586년에 바빌로니아에게 정복당했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많은 백성들이 노예로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이 사건을 바빌론 유수라고 한다. 그들은 기원전 539년에 풀려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다시 세웠다. 유대인은 이때부터 금세기초까지 거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이방인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런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물음을 던졌다. 왜 다윗왕국은 멸망하고,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불행을 겪게 되었을까? 기원전 750년 경에 그 백성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아서 하느님이 벌할 것이라는 예언자들이 등장했다.
메시아, 하느님의 아들, 구원, 하느님 나라. 이 모든 단어가 정치적 의미를 띠었다. 예수의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메시아 예수를 다윗왕과 동일한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지도자로 생각했다. 로마의 지배를 받던 유대인의 고통을 끝나게 해주는 민족 해방자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는 유대인을 이방인의 구속에서 풀어줄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죄와 허물에서 구언해 줄 것이며 무리 모두를 죽음에서 구할 것이다. 이런 구원의 희망은 헬레니즘 문화 전반에 퍼져 있었다. 그런데 예수가 왔다. 예수는 민족 구원자로 섬김을 받았다. 예수는 백성들이 자기에게 성유를 바르자 '이제 시간이 되었다. 하느님 나라가 임박해 있다'고 했다.
예수는 자신이 어떤 군사 및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했다. 예수의 사명은 훨씬 더 큰 것으로 모든 인간에게 구원과 하느님의 죄 사함을 알리는 것이었다. 예수는 하느님이 너의 죄를 용서하셨다고 말했다. 율법학자들 사이에 예수에 대한 반감이 싹텄고 결국 그를 처형할 음모를 꾸몄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이웃 사람과 약한 사람돕기 그리고 모든 죄인에 대한 용서라고 가르쳤다. 예수는 전생애를 통해 창녀, 부패한 세리, 민족의 배신자들과도 거림낌 없이 이야기 했다. 예수가 산상 설교에서 엄격한 윤리적 요구를 내세웠을 때, 하느님의 뜻만을 나타내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어떤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의롭지 못함을 보여주려 했다. 예수는 비범한 방식으로 그 시대의 언어를 사용하여 낡은 상투어에 대단히 새롭고 큰 뜻을 붙었다. 그의 급진적인 구원의 가르침은 많은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협했으며, 그 결과 이들의 손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소크라테스 경우 우리는 인간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일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예수의 경우에는 이웃을 무조건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 아테네의 가장 의로운 사람이 죄인으로 몰려 죽은 사실에 플라톤이 분노했다. 기독교에 따르면 예수는 모든 사람중 유일하게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는 인간을 위해 죽었다. 그것은 예수가 대신한 고난이다. 기독교회는 예수 부활을 토대로 뿌리를 내렸다. 교회는 육체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죽음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은 하느님의 기적을 통해 가능한 것이지 결코 우리의 공적 때문이거나 타고난 성질에 따라 자동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예수의 속죄를 통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예수가 죽은지 몇해 뒤에 바리새인이던 바울이 기독교에 귀의해서 그리스와 로마 세계전역을 돌며 전도해 기독교를 세계 종교로 만들었다. 사도행전이 그런 행적을 전한다. 한 유대인이 아테나 광장에 나타나서 십자가에 못박힌 뒤 죽음에서 부활한 구원자의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이미 바울이 그리스를 방문할 때부터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의 구원론 사이에 충돌이 예고되었다.
“ 그분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므로 사람이 만든 신전에서 살지 않으십니다. 또 하느님에게는 사람 손으로 채워드려야 할 만큼 부족한 것이라곤 없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조상에게서 모든 인류를 내시어 온 땅위에 살게 하시고 또 그들이 살아갈 시대와 영토를 정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는 그 분 안에 숨쉬고 살아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무지했던 때에는 눈을 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는 사람에게나 회개할 것을 명령 하십니다." (사도행전)
에피쿠로스나 스토아철학 또는 신플라톤철학과는 아주 다르게 바울은 그리스문화 속에서 확고한 발판을 찾아냈다. 그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신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울이 말한 새로움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나타나고 실제로 그들과 만났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인간이 인식으로 추구할 수 있는 단순한 철학의 하느님이 아니다. 하느님은 역사를 주관하고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인격적 하느님이다. 사도 바울 전도 당시에 기독교가 필요했던 것은 정신적인 지도였다. 그리스인이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바울은 그것을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종파 이상이다. 기독교는 보편적인 구원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구약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예수가 맺은 신약으로 바뀌었다. 교회는 기독교의 교리를 명백히 알려야 했다. 밖으로는 다른 종교와 경계를 분명히 하고 안으로는 교회 안의 불화를 막는 것이 중요했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신앙고백이 생겼다. 신앙고백은 기독교의 중심적인 교리를 잘 드러내는 것이다. 이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는 예수가 신인 동시에 인간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일 뿐' 아니라 하느님 그 자신이었다. 교회의 복음은 바로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세계에 기독교가 흘러들어온 것은 두 문화권이 극적으로 만났음을 뜻하고, 아울러 문화가 역사적으로크게 변천했음을 뜻한다. 그렇게 이후 고대시대에서 벗어나 중세 기독교 시대가 천여년 가량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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