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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헬레니즘

*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다만 믿을 수 있는 것들은?

* 한 인간의 인생관을 규정하는 몇가지 요인들은 무엇일까?

* 양심이란 무엇일까?  모든 인간이 동일한 양심을 지니고 있을까?

* 가치 우위란 무슨 뜻일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다.  우주는 커다란 마술사의 모자에서 끄집어 낸 토끼와 비교할 수 있다. 철학자들은 위대한 마술사 눈을 보기 위해 토끼 가죽의 가는 털 중 하나를 붙잡고 위로 기어오르려고 한다. 그들의 성공여부는 알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한 철학자가 다른 철학자의 등에 올라탄다면 부드러운 토끼털 안에서 점점 더 높이 올라갈 것이다. 플라톤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단순히 다른 시대와 환경속에서 살다가 갔기 때문에 오늘날과는 다른 인생관을 가졌다.  그 밖에도 중요한 것은 각 사람의 개인적 경험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도 인생관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성은 환경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세상 사람들은 환경이나 사회적 관계를 플라톤의 동굴속의 지배적 상황들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을 통하여 개인은 동굴의 어둠에서 벗어나 위로 올라 갈 수 있다.  그렇게 옮겨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개인의 용기가 필요하다. 소크라테스는 이성의 도움으로 그 시대의 지배적인 견해에서 벗어난 인간의 좋은 예이다. 양심이란 옳고 그름에 반응하는 인간의 능력이다. 양심은 타고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양심이 하는 말은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다. 소피스트들은 각 개인이 자라온 환경이 그가 옳다고 여기는 것과 그르다고 여기는 것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사람들이 발가벗고 돌아다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학대할 때 대부분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하지만 '양심이 있다'는 것과 '양심을 쓴다'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마찬가지로 이성이라곤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 많지만, 그것은 그들이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데 원인이 있다.  가치우위란 무엇일까?  어떤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기 위해 차를 타는 것은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자동차 이용이 숲을 죽게 만들고 자연에 해독을 끼친다면,  우리는 가치를 선택하는 문제에 맞닥뜨린다.  건강한 숲과 깨끗한 자연이 일터로 빨리 출근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내가 볼 때 철학이 영어문법보다 더 중요하다.  따라서 철학과목을 시간표에 포함시키고, 그 대신 영어 시간을 줄인다면 그것은 이성적인 가치우위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인간살아온 시기를  기원전과 서기로 표현한다. 시기에서 가장 중요하고 제일 특이한 것이 기독교다. 알렉산더 대제의 정복결과로 생긴 거대한 정치적 변혁과 연관이 있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와 싸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수많은 출정을 통해 이집트와 인도에 이르는 전체 오리엔트를 그리스 문명과 연결시켰다.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어가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국제적인 공동체가 생겨난 것이다.  300년 정도 지속된 이 시기를 헬레니즘 시대라고 부른다.  헬레니즘이란 세 개의 큰 지역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에서 융성했던 그리스적 문화를 뜻한다. 기원전 50년경부터 로마가 정치적 군사적 패권을 넘겨받았다.  로마는 헬레니즘 제국들을 차례로 모두 정복한 후 로마 문화와 라틴어가 서쪽의 스페인에서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파고들며 지배적 문화와 언어기 되었다. 로마는 헬레니즘세계를 정복하기 전에 이미 그리스의 문화적 식민지가 되어 있었다. 

 

헬레니즘은 여러나라 문화의 경계가 사라짐으로써 형성되었다.  이전에는 그리스인, 로마인, 이집트인, 바빌로니아인, 시리아인, 페르시아인이 각기 고유한 종교적 틀에서 자기 신을 숭배했으나 이제 여러 문화가 종교적 철학적,  과학적 관념으로 뒤섞이게 된 것이었다.  신과 종교적 관념들을 서로 여러 옛 문화권에서 빌려온 새로운 종교가 몇가지 생겨났다. 예전 사람들은 자기 민족과 국가에 결속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민족과 국가 사이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면서 인생관에 관련해서 많은 사람이 의구심과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후기 고대는 어디서나 종교적 의구심, 문화적 해체, 비관주의가 문화를 지배했다. 우주의 진정한 본성을 분명히 통찰하는 것이 종교의식과 마찬가지로 영혼의 구원문제에서 중요했다.

 

헬레니즘 학문 역시 여러 문화적 경험의 혼합으로 결정지을 수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철학학교들로 아테네가 철학의 중심도시로 군림하는 동안 알렉산드리아는 과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옛 것과 새것의 혼합, 즉 종교와 철학과 과학의 혼합이 세계관의 장터에서 선보일 새로운 신상품의 기초를 어떻게 형성해 낼 수 있는지,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에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지식 거의 대부분이 실제로 무엇보다 헬레니즘까지 거슬러 그 뿌리를 감지할 수 있는 오랜 사상의 부스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헬레니즘철학의 공통점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가장 유덕하게 살다 죽을 수 있는지,  그 질문에 해답을 찾기를 소망했고 윤리학의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윤리학은 새로운 국제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적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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