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플라톤은 몇가지 과제를 내었다. 빵굽는 사람이 어떻게 과자 50개를 똑같이 구워낼 수 있을까? 빵굽는 사람이 똑같은 과자 50개를 만들려면 하나의 틀을 사용하면 된다. 두 번째 말들이 똑같은가? 말들은 똑같지 않다. 서로 조금씩 다르다. 마찬가지로 찍어낸 과자도 조금씩 다르다. 좀더 더 두꺼운 것이 있고 부스러진 것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인간에겐 불멸의 영혼이 있을까? 여자와 남자는 똑같이 이성적일까? 플라톤이 말하는 이성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활용해 철학적 진리를 통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예도 귀족처럼 똑같은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실 때 플라톤은 스물아홉살이었다. 아테네가 이 도시의 가장 고상한 현인에게 언도한 사형 선고는 플라톤에게 지울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겼을 뿐 아니라, 그의 전체 철학적 탐구 방향을 규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사회 속의 현실적 관계와 진리나 이상사이에 어떤 모순이 있는지 플라톤에게 드러내보여 주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 법정 진술을 기록해서'변명'이라는 책을 만들었고, 일련의 편지모음인 '대화'편을 썼다. 플라톤은 아테네에서 직접 철학학교를 설립했다. 그리스의 전설적 영웅 아카데모스의 이름을 가진 숲속에 있었다. 학교 이름은 아카데미아라고 불렀다. 아카데미아에서는 철학, 수학, 체육을 가르쳤다. 이곳에서는 가르치기보다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플라톤은 무엇을 탐구하려 했을까? 간단히 말하면 플라톤의 관심은 영원하고 변치않는 것과 흘러가는 것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있었다. 이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는 자연철학이 제기한 철학문제에 등을 돌리고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더욱 관심을 쏟았다. 인간의 도덕과 사회적 이상이나 덕이 문제일 때, 그들은 영원한 것과 변화하는 것의 관계를 물었던 것이다. 소피스트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는 도시 국가마다 다르고 또 세대가 바뀌면서 변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옳고 그름의 문제는 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의 행동에 대한 영원한 규칙이나 규범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이성을 사용한다면 변치 않는 규범을 모두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이 불변하기 때문이다.
엠페도클레스와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자연현상이 변하기는 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사물이 네가지 있다고 말했다. 뿌리 혹은 원자가 그것이다. 플라톤은 '우리가 자연에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만물은 모두 변한다'고 생각했다. 감각세계에 속하는 만물은 시간이 흐르면 소멸하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만물은 영원하고 변치 않는 초시간적 형상으로 이루어졌다. 말 한 마리 한 마리는 물론 변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늙고 병들고 나중에는 죽는다. 그러나 말이라고 하는 그 고유한 형상만은 영원히 안 변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영원하고 변치 않는 것은 어떤 물리적 원질도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그것에 따라 모든 현상이 형성되는 정신적이고도 추상적인 밑그림인 것이다. 레고 조각이 어떻게 저절로 말이 되겠는가?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이 레고 조각을 또다시 짜맞추어야 새 말이 생겨난다.
또 새로운 말을 조립할수 있는 것은 이미 네 머릿속에 말의 모습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어떻게 모든 자연의 현상들이 비슷할 수 있는지 경이롭게 여겼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 눈에 띄는 만물위에 혹은 뒤에 한정된 몇몇 형상들이 있다고 결론 지었다. 플라톤은 이 형상들을 '이데아'라 불렀다. 플라톤은 감각세계의 뒤편에 참된 현실이 있음을 믿었다. 이 현실성을 이데아 세계라고 불렀다. 플라톤은 우리 주위의 자연에서 볼수 있는 만물, 즉 우리가 잡고 만져볼 수 있는 모든 것은 한낱 비누 방울에나 비유할 수 있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각세계에 실재하는 사물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영원 불변하지 않는다. 꼭 두 눈으로 그 형상을 보는게 더낫다고 단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우리 감각에만 모든 것을 의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력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성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은 믿을 수 있다. 플라톤은 수학에도 열중했는데 수학적 상태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자연속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대신 정신의 눈을 통해 분명히 볼 수 있는 이상적인 원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의 감각이 인지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오직 불확실한 의견밖에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성을 통해 인식한 것에 대하여 우리는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은 영원히 180도이다. 또 감각세계에서 볼 수 있는 말이 언젠가 모두 절름발이가 된다해도, 말은 네 개의 다리로 서 있다는 이데아는 계속 보편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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