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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철학 (지바마사야 지음, 박제

공부의 기술

 환경에 제약당한 나머지 가능성을 좁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언어를 더욱 자유롭게 사용하는 상태, 즉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환경의 동조로 속단하지 말고 멈춰 서서 환경을 메타적으로 바라보고 언어를 아이러니, 유머적으로 사용하여 다른 가능성을 수 없이 고찰해야 한다. 공부를 하면 동조에 서툴러지고 재수 없어지고 약아빠진 사람이 된다. 공부하는 이상 그것을 피할 수 없다. 그것 없이는 깊은 공부가 불가능하다. 근육단련으로 근육량을 늘릴 때 동시에 지방이 느는 것과 마찬가지다. 

 

향락적 집착이란 자신의 바보스러움이다바보는 영어로 idiot이다.  고대 그리스어의 idios에서 왔다. '개인의 특이한'이라는 뜻이다. 향락적 집착은 아마도 변화 가능하다. 공부의 시야를 넓혀 자신의 향락을 분석하면서 공부를 계속하다 보면 한 바보스러움이 다른 바보스러움으로 변화한다. 다른 방법으로 다른 바보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그 자리에서 겉도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바보스러움을 장착한 채 행위한다.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되고, 자신의 향락을 활용하여 유한성을 의식하는 공부. 생활분석과 자기 분석을 통해 키워드, 문제를 발견한 후에는 실제로 어떻게 공부라는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가?

 

신뢰할 수 있는 저자가 쓴 종이 책은 검색해서 금방 나오는 인터넷 정보보다 신뢰할 수 있다.  공부를 시작할 때는 이 태도를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제대로 된 책을 읽는 것이 공부의 기본이다. 전문분야로 들어가기 위한 전제로서 어느 정도로 알아야 대충안다고 할 수 있는지 그 범위를 파악한다. 필요한 것은 맨 처음 발판을 임시 고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입문서는 여러 권을 읽고 비교해야 한다. 한권만 읽고 그것을 굳게 믿어서는 안된다. 공부의 순서는 여러 입문서- 교과서- 기본서이다. 우선 교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것이 아니라 사전처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입문서에서 알게 된 내용에 관해 교과서에서 해당하는 부분을 찾는 동안에 교과서는 여기저기를 모자이크 형태로 읽은 상태가 된다.  공부에 깊이를 더하려면 다독이나 통독은 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책을 알 필요가 있다. 머릿속에 책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가령 A라는 책은 B라는 책의 영향을 받았다.  B의 결론은 C라는 책과 대립한다.

 

새로운 표현에 대한 위화감을 소중히 하자.  그 분야(환경)에서 쓰이는 표현(사고 방식)의 코드를 메타로 바라보는 것이다. 애초에 기존의 자신과는 이질적인 세계관을 얻으려 애쓰는 과정이므로 체감에 맞지 않는 내용이 쓰여 있는 것이 당연하다.  새로운 표현 = 사고방식에 동조함으로써 자신의 감각이 확장된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파괴다.  기존의 자신에게 지식이나 스킬을 덧입히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법, 사고하는 법을 뿌리부터 뒤흔들리기 때문이다. 공부란 스스로 문헌을 읽고 고찰하는 것이 본체이고, 교사의 말은 보조적인 것이다. 정보의 유한화가 포인트다. 교사는 우선 '이 정도면 됐어'라고 공부를 유한화해 주는 존재다. 그렇게 유한화된 정보를 축으로 삼아 스스로 더욱 많은 책을 읽고 알아보면서 공부에 깊이를 더해야 한다. 교사란 유한화 혹은 절단의 장치다. 독학할 때는 입문서가 교사의 역할을 담당한다.

 

질리지 않고 공부를 계속하려면 완벽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사나 저자 나름의 프레이밍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어떤 시각이 개인의 향락적 집착에 의해 임시 고정된다. 교사나 저자는 어떤 향락적 집착을 배경으로 어떤 종류의 가르치는 법을 지니게 마련이다. 향락의 레벨에서 교육에 대해 자신만의 맞고 안 맞음이 있을 것이다. 당신과 맞는 교사와 저자라면 분명 당신 자신의 향락적 집착에 공명하는 부분이 있을 터이다. 당신과 맞는 교사는 향락의 핵심 부분에서 비의미적으로 마음이 맞는 것이다. 어떤 입문서를 골라야 할까?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나 기관의 정보를 신뢰하면 된다. 공부할 때 신뢰해야 타자는 공부를 계속하는 타자다. 공부의 발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전문서다. 더욱 한정하면 학문적인 연구서다.  그 외의 것을 우리는 일반서라고 한다.  학문적 연구서는 엄밀한 것이다.  신중한 관찰과 시험, 자료의 독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보 비교를 계속하는 사람들,  즉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들은 어떤 지적인 상호의 신뢰의 공간에 속해 있다. 이것은 연구이자 가장 딱딱하게 말하자면 학문이다. 신뢰성의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인) 근거란 그 저자,  문헌이 지적인 상호신뢰의 공간에서 신뢰를 받고 있는지 여부다. 동종의 주제에 관해 타자와 나눈 건설적인

논의가 배경에 있는지 여부다.

 

학문은 다른 입장의 비교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비교가 자기 목적적이다. 이상론으로 말하자면 학문은 특정 이해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중립적이다. 이것은 이상론일뿐 학자나 학회도 마찬가지로 세상의 이해관계와 얽혀 있기에 학문 행위에서 정치적 색깔을 읽어내는 일도 필요하기는 하다. 한편 직업현장에서는 분명히 이해관계로 얽히기 때문에 중립적으로 비교를 계속하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결론을 서둘러 내는 것이 중요하다. 비즈니스 도서가 그중 하나인데 시대에 맞춰야 해서인지 새로운 제도나 기술을 충분히 비판적으로 숙고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일이 잦다. 이러한 성급함에 대항하여 멈춰 서서 사고하도록 하는 것이 학문적 태도라 할 수 있다. 공부를 진행할 때 만큼은 학문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에 더욱 현대적이고 현장적인 지식을 둔다는 이중구조를 취해야 한다. 좋든 싫든 학자는 기초적인 문제에 대해 끝없이 논의 한다.  그러므로 학문 세계에는 속도가 생명인 직업현장에서는 간과하기 쉬운 복잡하고 섬세한 지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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