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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철학 (지바마사야 지음, 박제

집착

고찰해야 할 대상은 비교를 계속하는 한편 비교를 중지하는 것이다. 이것을 결단이 아닌 비교를 중단한다고 표현하자. 비교를 계속하면서 임시로 더 나은 결론을 내는 것이다우리는 어떤 임시 고정의 결론을 지속적인 비교속에서 서서히 포기하고, 또 다른 임시 고정의 결론으로 옮겨가야 한다. 어떤 결론을 임시 고정해도 비교는 계속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매일 정보수집을 계속해야 한다. 다른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정보를 검토하여 계속 축적한다. 이것이 공부를 계속하는 일이다. 아이러니 (지나치게 파고드는) 방향으로 비교를 끊어버리려 하면 자칫 결단주의로 흘러간다. 그렇다고 비교를 하지 않으면 유머(한눈팔기)방향으로 복수의 타자 사이를 한없이 헤매고 다니는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지금까지 이어온 논의에서는 타성적으로 환경의 동조에 따르기, 그리고 무가 되어 결단해버리기는 있어서는 안 될 태도로서 배제했다.  그 결과 우리는 비교를 계속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신뢰할 있는 타자란 끈질기게 계속 비교하는 사람이다. 비교를 계속하는 사람은 역시 비교를 계속하는 사람을 신뢰하고, 그런 사람들을 계속 비교하고 있을 터이다. 이처럼 신뢰성의 절대적인 지지는 아무 데도 없고, 언제 무너질지 모를 불안정한 상호신뢰의 상황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최종적으로 발판이 되는 것은 나 자신의 향락이다.  결단주의와는 다르게 비교를 실행하는 나 자신은 개성적인 알맹이를 지닌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내가 있는 것이다. 향락적인 내가. 한편 결단하는 나는 결단만 하는 텅빈 나였다. 향락적 집착은 절대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 가능하다는 사고방식을 제시하고자 한다. 비교 프로세스를 도중에 절단하는 칼날이 바로 향락적 집착이다.

 

공부의 기본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아이러니에 파고들지 않고, 즉 너무 깊게 의심하지 않고 유머적으로 다수의 가능성을 연상해야 한다. 향락적 집착은 타자와의 우연적이고 강한 만남을 통해 생겨 난다.  자신의 불호라든가 시시비비에는 만남의 우연성이 새겨져 있다.  지금부터 타자와의 우연적인 만남을 한마디로 '사건'이라고 부르겠다. 사건 자체에서 집착이 직접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니다. 집착이라는 사건이 어떤 환경속에서 언어를 통해 의미 부여되고, 기능을 지니게 된 결과다.  사건은 단순하고, 우연적이고, 무의미하고,  강렬한 이므로 자신은 그것에 어떻게든 언어로 의미를 부여해서 이해하려 한다.

 

어떤 환경이든 언어에는 일종의 편향된 가치관이 베어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환경의 가치관이 배여 있는 언어로 사건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사건은 트라우마를 일으킬 정도로 강하므로, 그것을 어떻게든 이해하기 위해 동원된 언어(가치관)는 나 자신과 굳게 연결된다.  이것이 집착의 환경 의존적이다.  환경에서 가치관이 언어를 차용해서 다른 수 많은 것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좋지 않다고 의미를 부여하고는 이해한 것이다. 경험적으로 말해서 호불호중 일부는 살다보면 변화하는 방법이다.  집착의 환경 의존적인 면(집착의 껍데기)을 분석하고 해체하여 발단에 있는 무의미한 사건(집착의 핵)쪽으로 돌아가려고 애쓴다.  즉 사건과 다시 만나려고 노력한다. 사건의 이해방식을 돌아보고 조금이라도 바꾸려 하는 것, 이것이 집착의 방법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는 노력이다. 자기나름의 집착은 깊은 수준에서 환경 의존적으로 의미 부여된 것이다.

 

환경의 동조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과제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작용하는 자기 나름의 근원에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무의미로 향해 가는 것이다. 무언가에 무의미하게 집착한다라든가 의미없이 집착한다는 말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실은(환경적인)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부가 자신의 어디까지 깊이 도달할지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경험상 집착은 공부를 통해 어느 정도는 변한다. 자신의 현상황을 메타적으로 분석함으로서 공부의 가능성은 한없이 펼쳐진다. 공부를 유한화하려면 신뢰수 있는 정보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향락적 집착을 통해 발판을 정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욕망해 왔는지 연표를 만들어보라. 이것을 욕망연표라고 이름 붙이기로 하자. 정확히는 향락 연표지만. 자신에게는 이떤 향락적 집착이 있는지 그 성립의 역사를 연표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우선 태어난 때부터 시작해서 학교입학, 졸업, 취직 연도를 큰 기준으로 적어 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현재 하는 일이나 주된 흥미로 이어지는 중요한 포인트를 생각나는데로 기입한다.

 

그리고 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 상품, 작품, 인물 등의 명칭과 연도를 기입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더욱 시간의 폭을 넓혀서 자신의 위치를 커다란 역사의 흐름과 연결해 본다. 이런식으로 현재의 자신이 어떤 타자에게 자극받아 어떤 거대한 시대 상황속에서 구축 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메인 욕망연표’이다. 서브욕망연표에는 자신의 현상황과 이어지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돌이켜보니 떠오르는 묘하게 집착하는 이나 뭔가 인상 깊은 것을 기입한다.  메인 욕망연표와 서브 욕망 연표를 이어주리라고 생각되는 추상적인 키워드를 억지로라도 일부러 떠올린다. 추상적인 키워드는 무의식 수준에서 자신의 마음을 움직여온 커다란 인생의 콘셉트에 해당한다. 자신이 지금껏 어떤 식으로 타자에게 영향 받아왔는지를 되돌아봄으로써 무의식과 의식을 연결하는 말을 임시로 상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의 콘셉트는 변경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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