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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철학 (지바마사야 지음, 박제

결단주의 vs 비교

 키워드를 도출하여 들어맞는 분야를 생각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하다보면, 공부의 범위는 점점 넓어진다. 공부이 유한화가 필요하다. 공부는 두 방향으로 한이 없어진다. 추구와 연상, 아이러니와 유머라는 방향으로, 바꿔 말하면 지나치게 깊이 파고들기와 한눈팔기다공부는 아이러니가 기본이므로 깊이 파고 들어가다보면 한눈팔기가 자주 일어난다. 어떤 입문서를 딱 한권만 읽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페미니즘이라는 간결한 단어의 이면에는 복잡한 논쟁이 존재한다. 세상의 진리가 결국 모습으로 드러내는 최후의 공부,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할까? 절대 최후의 공부를 하려 해서는 안된다.  절대적인 근거를 추구하지 말라는 소리다.  지나치게 깊이 파고들기-한눈 팔기- 지나치게 깊이 파고들기- 한눈팔기... 이 프로세스를 멈추고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하는 것이 공부의 유한화다.

 

우선 얕은 수준으로 보자면 어느 정도는 환경의 동조에 의해 정하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주변사람 모두가 읽는 책이니까 읽어볼까 하는 동조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근거한 비교를 자기 나름대로 제대로 받아들여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다만 그 결론은 절대적이지 않은 가상의 것이어야 한다. 이때 두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문제다. 누구의 어떤 정보라면 신뢰할 수 있는가? 그러나 절대적신뢰성은 존재할 리 없다. 둘째 자기 나름의 비교를 받아들이는 문제다. 이것은 흥미, 관심, 호불호, 맞고 안맞는 문제와 같은 본인의 개성이 판단에 관여한다는 뜻이다.  즉 비교 검토에서 향락적 집착의 비중이 커지는 것이다.자기 나름대로 생각해서 비교한다는 것은 신뢰할 만한 정보를 비교하는 행위를 어느 정도 선에서 향락적 으로 중단하는 일이다. 공부의 대상이나 범위를 유한화하는 방법은 세가지다. 여기서 결단과 중단의 대비는 아이러니와 유머에 대응한다.

 

1. 환경의 동조에 맞추기: 부수적인 유한화

2. 아이러니: 결단에 의한 유한화

3. 유머: 비교의 중단에 의한 유한화

 

결단이란 '자기나름'이라는 기준의 극단적인 형태다.  그것은 자신이 소멸할 정도로 강하다. 결단은 환경의 절대적 외부로 나오는 것이다.  즉 다른 모든 것을 철저히 무시하는 자기나름이다. 누가 무슨 밀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 자신의 절대적인 결단,  이것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환경의 동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궁극의 방법이다. 아이러니에서 결단주의로 무언가를 선택할 때 아이러니컬한 태도를 끝까지 파고들면 궁극의 진정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진다. 비교에 최선의 해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근거가 부여된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근거가 없다고 결정해버린 상태가 오히려 가장 근거가 부여된 상태다.  절대적인 무근거= 절대적인 근거.

 

결정했다면 그것을 따른다는 형태로 일종의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단순히 결정하라는 것이다. 결단을 때는 그저 우연한 것, 우연히 만난 것 중에 뭐든 결정해도 좋다. 어떤 결론이든 괜찬다. 대담하게 결단하자. 결정사항을 따르면 되는 상황이 된다. 무언가를 근거없이 결단하는 것, 역설적으로 그것만이 절대근거가 부여된 결단이다.  이 결단에 의해 무언가가 진리가 된다.  배타적인 자세로 그 진리를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이것을 결단주의라고 부르자. 아이러니적인 유한화는 결단주의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근거는 결단에만 깃든다. 나는 결단의 순간에서 무다. 알맹이가 텅 빈 상태다. 결단 앞에 선 나 자신이 무엇인지는 결단과는 상관없다. 알맹이가 텅빈 내가 뭐든 상관없는 임의의 타자와 만나 그 타자를 절대화 한다.  우연히 어떤 사람의 사고방식과 만나 그것에 완전히 점령 당한다. 결단이란 자신이 내린 결단의 절대화다. 그것은 곧 타자에 대한 절대복종이다.  나 자신은 어떤 타자에 완전히 점령 당하여 하나의 진정한 세계관으로 들어간다. 아이러니는 애초에 비판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결단주의로 전환하면 무비판적인 삶의 방식을 갖게 된다. 다른 생각을 듣는 귀가 없어져 버린다. 그러므로 결단주의는 피해야 한다.아이러니의 비판성을 살려두려면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복수의 타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유머적 유한화, 이것은 복수의 타자 사이를 여행하면서 고찰하는 것이다. 제대로 고찰해서 비교해야 한다. 비교에 절대적인 결론을 내려 하지 않는 비교를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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