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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들려주는 작은 철학 ( 롤란트

유토피아

유럽에서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하고 나자 아느 순진한 미국의 철학자는 '자유사회가 이제 승리자로 우뚝 섰다'고 했다. 시민적 민주국가들이 더 우수해서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 승리한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 국가들이 민주국가보다 더 편협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실업은 우리를 강하게 압박하는 문제다. 자본가들이라 불리는 고용주들은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사회규정들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사회적 모범으로서 우리는 아시아 국가들을 본다. 그들은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여 성공적으로 더욱 발전시켰다. 만일 히틀러가 유럽을 전쟁속으로 몰아넣지 않았다면, 유럽사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경제적인 무능으로 공산주의가 몰락한 것과 달리 파시즘은 자유세계가 세계대전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에서도 그 어떤 결정적인 발전도 읽어낼 수 없았다. 계몽주의 이념들은 19세기에 반대이념에 의해 줄곧 의혹이 제기되었고 20세기는 완전히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유토피아라는 개념이 철학으로 들어온 것은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출간한 책을 통해서다.  16세기 초는 유럽인들의 탐험시대였다. 많은 여행자들이 외지민족들의 관습을 보고하는 책을 썼다. 토머스 모어는 책에서 어느 세계 여행가가 유토피아 섬의 방문을 보고 하면서 그곳 국가와 주민들이 관습을 기술하고 있다이 책의 핵심은 유토피아나 유토피아 사람 모두가 허구라는 것이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는 곳을 뜻한다. 이곳에서는 필요한 노동이 모든 인간에게 균등하게 할당된다.  모어는 붕건사회에는 영주의 측근들이며 성직자들, 부잣집 부인네 등 놀고 먹는 사람들이 무척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어는 국가의 모든 인간이 필요한 일을 나누어 하게 되면 하루에 6시간만 일하면 되고, 모두가 잘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그래야만 여가에 의미있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여유와 의욕을 갖게된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거대한 부를 축적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일하지 않으며 사치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외면적인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모든 기술적 진보가 더 많은 여가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하지 않으며 삶의 의미에 대해서도 우리와 다른 더 이성적인 표상을 가지고 있었다 것이다.  소비세계에 사는 우리의 비이성적인 모습은,  이 지구에 사는 부유한 소수의 소비를 유지하게 하고, 지구의 모든 비축물이 그릇되이 남용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무한성장의 이데올로기속에서 사는 우리는 우리 지구도 역시 하나의 작은 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최근 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한 세대쯤 후에 유토피아에 대한 가상의 여행기‘ 노바 아틀란티스' 를 썼다. 고대에는 큰 바다에 있는 아틀란티스 섬에 대한 신화가 있었는데, 이 섬 사람들은 황금시대같은 평화로운 조화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베이컨은 노바 아틀란티스에서는 과학과 기술이 커다란 역할을, 아니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갖가지 연구시설과 실험실, 교육시설, 과학연구기관들을 묘사하였다. 17세기에는 유토피아였던 것이 오늘의 현실이 된 것이다분명히 사회적 유토피아를 위해 애를 쓰지만,  기계를 발명하기보다 이성적인 사회를 설립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다18세기 계몽주의가 꽃핀 시대에 사람들은 인간성의 진보에 대해 긍지를 가졌으며, 그들은 이 시대를 빛의 시대라고 일컬었다. 19세기 사람들의 머릿속은 점점 어두워져서 전깃불의 발명은 도시들을 밝혔지만, 인간의 이성을 밝게 하지는 못했다.  20세기의 참담한 역사는 인간이 유토피아에 이르지 못하고  단지 노바 아틀란티스에 도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여주었다.  우리의 기술적 지식은 가속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우리의 실천적 정치적 이성이 성장하지 못하면, 그러한 재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부정적인 유토피아들이 제기되었다.  러시아인 예브게니 자미아틴은 자신의 책 ‘나의’ 에서 처음으로 스스로가 최선이고,  진리의 수행자라고 주장한 한 정치체계가 거기에 빗나간 다른 견해들은 어떻게 박해하는지 기술하였다.  어떠한 진리 주장이라도 독단적으로 되면 다른 사상들을 억압하게 된다. 그것은 종교나 정치사상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두 개의 유토피아는 오웰의 ‘1984년’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이다.  ‘1984년’전체주의 체제가 기술되는 데 이 체제는 모든 인간을 억압하면서 자유로운 의견과 반대의견을 박해하며, 자신의 권력을 굳게 지키기 위해서 일련의 기관들과 메커니즘을 개발한다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부정적 유토피아인 데,  이 부정적 유토피아의 야비함은 그 이름에서 풍자적으로 내비치는 데, 이 세계는 플라톤의 최선의 국가를 반어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꼭대기에 자리잡고 세계를 관장하는 대표자는 철인군주의 현대적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는 가장 현명한 자로서 이 체제를 꿰뚫어보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진실에 대해 무지한 채 자유롭지 못하다.

 

태아들은 세상에 나올 때까지 호르몬 처방이나 다양한 영양주입 등의 적절한 조작을 통해 각각 의도된 유형으로 변화되며 자란다.  가족이라든가 가정에서의 자녀양육은 폐지 되었다.  그들은 잠자는 동안 지식과 선입견을 주입 받으면서 ‘멋진 신세계’를 지상 최고의 낙원으로 여기고, 자신의 위치에서 완전히 만족하며 행복할 수 있도록 세뇌 당한다.  행복은 언제나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의 목표이며,  최선의 국가는 모든 구성원이 자아를 실현하면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국가이다. 게다가 엄청난 노동의욕을 주입받는다.  이 사회에서는 수많은 여흥거리와 오락과 환각제가 늘려있어서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의 소비문화와 여가문화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기분을 좋게 유지하고,  퀴즈게임이나 십자낱말 풀이 이상의 까다로운 것으르 요구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멋진 신세계를 향해 가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웰의 경우 ‘1984년’의 사회가 폭력적이며 인간을 억압하고, 박해하고 ‘멋진 신세계’는 인간의 의식을 조종하기 때문에 친절하다. 후자가 훨씬 더 위험하다.

 

오늘날 사상가들은 계몽주의자들이 참으로 순진한 진보의 신봉자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미래의 오늘날의 우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사실 계몽주의자들은 과거의 참상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종교재판, 마녀화형, 종교전쟁, 비관용 등 과거의 모든 해악이 계몽주의를 통해 극복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들은 20세기 인간들이 내란과 독재, 고문, 집단학살 등의 문제를 들어 자신들을 반박하리라고는 절대로 예상치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을까?  남자든, 여자든 모두가 자유를 누리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모든 사람이 지식에 참여하고, 인간의 모든 창조적 가능성에서 제 몫을 취함으로써 개인적 관심과 행복을 실현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로써 의미에 대한 질문의 장을 끝맺을 수 있다.

 

인간은 먼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묻고, 이 질문을 세계로 옮긴다.  세계가 어떤 계획적인 행위의 결과일 것으로 여기고, 이 세계 창조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신은 마치 상인처럼 계산하여 악을 선으로 상쇄 시킨다는 답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신, 도덕적 세계질서와 세계의 의미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면,  우리는 이제 인간의 세계를 위해 의미를 찾아나서야 한다.  우리는 선이 과연 무엇이며,  선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애써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질문해야 한다. 우리 인간은 행동규칙들과 우리가 스스로 정한 계율들 그리고 법들 속에서 언제나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목표를 추구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올바른 길을 찾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놓여있다. 우리는 여전히 도중에 놓여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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