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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들려주는 작은 철학 ( 롤란트

마르크스, 케인스

마르크스

마르크스와 그 후계자들의 이론을 일컫는 고전적 시민경제학은 산업혁명 이후 발전상황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때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시민경제학이론의 문제점들을 해부하였다. 그는 사유재산의 생성과 교환경제의 발전에서 사회적 원죄를 보았다. 원래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한다. 인간은 옷이나 음식, 집 등 모든 물건에는 개인을 위한 사용가치가 있다. 사용할 물건이 너무 많을 경우 다른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리하여 언제든지 시장에서 물자를 교환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제 생산물 대부분은 고객을 위한 것이다. 생산목적은 결국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하려는데 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사회를 상품을 생산하는 사회라고 일컬었다. 사람들이 상품을 생산하면 자신의 사용가치가 아니라 남의 사용가치, 곧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품 속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복잡한 사회구조가 들어있다.

 

생산은 실제로 파악된 사회의 필요량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측하고 기대한 양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너무 많은 양이 생산된다. 시장경제사회는 애덤 스미스가 예언했던 균형을 언제라도 상실할 수 있는 위험가운데 있다.  마르크스는 질서가 잡힌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필요량을 먼저 파악하고 나서 생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이 먼저 있고, 생산된 전체가 필요한 것인지 남는 것인지는 나중에 시장에서 밝혀지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사이의 소외를 시민적 경제방식의 기본 해악으로 보았다.  그는 자유로운 인간들이 연합된 사회를 꿈꾸었다.  자유, 평등, 박애의 구호 속에서 표현되었던 계몽주의의 이상들을 마르크스는 다른 소유질서를 가진 사회, 바로 사회주의 사회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개인적으로는 타고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사회에 속해야 한다.  개인은 사회에 대한 기여로서 자기의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며, 일하여 획득한 것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몫을 받게 된다.

 

이는 경제가 중앙기관에 의해 조절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사회주의 국가체제의 목표는 모든 인간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자기실현과 물질적 제화에 대한 몫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한 국가형태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철두철미하게 이타적인 시민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이러한 플라톤은 이미 인간에게 그런 점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정치사상가들은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법규와 통제 체계를 생각했던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들의 권력자들은 철인군주로 행세했고, 자기의 뜻이 곧 민중의 뜻이라고 우기면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산업시대가 되고 시민 자본주의의 경제방식이 적용되었던 19세기 초반 이후 유럽역사를 보면 진보는 부분뿐이고, 무엇보다도 정치적 사회적 파국을 많이 겪었다. 나폴레옹 전젱이 끝나고 최초의 시민혁명인 프랑스대혁멸 성과를 취소시키고, 자신들의 예전 권력을 재창출하려 했다. 또 노동력 공급이 몇세대 걸쳐 노동에 대한 수요를 현저하게 초과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사회적 궁핍이 시작되었다.

 

19세기는 시민사회에서는 산업혁명과 더불어 재화가 엄청나게 늘어서 거대부자가 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비참해졌다. 마르크스는 시민사회를 총체적으로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응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을 선전했는데 그의 견해에 따르면, 자본 소유자들의 노동자 착취는 무산자들이 유산자에 대한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마르크스는 모든 역사가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하고,  그는 프롤레타리아에게 사회전복을 목표로 혁명에 성공하면  프롤레타리라 독재체제를 창설하자고 호소했다. 독재체제에서 시민들은 이타주의자로 교육받고 자유로운 사회가 실현될 것이며, 공산주의 사회가 되는 것이다. 플라톤이 구상했던 최선의 국가와 동일한 것이다. 하지만 공산주의혁명이 끝난 후 독제체제를 이루었지만, 프롤레타리아를 지배하는 독제체제였다자유진영에서는 20세기후반에 노동자들의 여건이 개선되었다. 새로운 직업들도 창출하였다.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생산형태들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사회복지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케인스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이후 경제이론에서는 반대의 두 이론을 중개하는 듯한 제3의 이론,  혼합적 경제형태이론이 부상했다. 그것의 창시자는 영국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였다. 그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경제가 잘 풀릴 때는 뒤로 물러나 있다가 경제가 나빠져 실업이 증가하면, 국가가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국가가 노동에 대해 지불할 때 그 돈은 국가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국가는 나중에 세금을 통해 지불된 돈을 거두어 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케인스가 제시한 모형의 한계가 있다.  국가가 너무 많은 빚을 질 수는 없으므로 예측할 수 있는 미래에 기대되는 수입으로 다시 갚을 수 있는 정도에서 그쳐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정치적으로도 많이 숙고했다.  계급사회였던 19세기 사회에서 정당들은 자기들의 뜻을 사회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여러 이론을 전개했다. 유럽국가들이 세계의 다른 지역을 분할하여 식민통치를 했던 19세기 제국주의와 국수주의 시대에는 도태나 품종개량 같은 생물학 개념을 사회에 적용시킨 인종주의와 국수주의 이론에 첨가되었다. 유럽인들의 이러한 혼합된 이론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당의 패배와 함께 러시아와 독일에서 내부변혁이 일어났다.  계속되는 불안정으로 파시즘이 출현하게 되었고,  러시아 공산주의인 볼세비즘과 민주주의 국가에 대해 똑같이 반대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였다.  전쟁이 끝나자 유럽은 시민적 자유주의의 서유럽과 동유럽의 공산주의로 양분되었다. 냉전이 시작되었다. 공산주의 국가들은 계몽주의 휴마니즘에 기반을 두었고, 모든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 통치는 사실 인간에 대한 억압 그 자체였다.  이에 반해 자본주의 국가들은 시민의 자유와 개인의 자기실현을 최고 가치로 놓았으며,  사회적 부를 할당할 때 차등을 두었고  실업자와 빈곤문제도 고려햐였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 완전한 파멸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복지국가를 건설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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