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딸에게 들려주는 작은 철학 ( 롤란트

윤리의식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고 실제로 그들은 선과 악의 인식을 얻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곧바로 자신들이 신의 계울을 어겼음을 의식하여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자기 인식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인간은 언제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과 도덕적으로 당연하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 사이의 긴장속에서 모든 행동을 취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욕망과 윤리적 질서 사이의 갈등은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다. 이때 윤리적 질서는 인간에게 어떤 특별한 행위들을 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이런 윤리질서가 어디에서 온 것이길래?  플라톤의 친척인 고대 철학자 크리티아스는 아주 명석한 답을 제시하였다. 아주 옛날에 인간의 삶은 질서란 것을 알지 못했다. 인간은 들짐승처럼 살았고 조야한 폭력이 세상을 지배했다.  그때는 선한 사람이 칭찬을 받는 일도 약한 사람이 벌을 받는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정의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지배하고 방종이 억제될 수 있도록 엄격한 교사로서 법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법이 그렇게 공공연한 폭력행사를 저지하게 되니까 이번에는 은밀하게 악행이 이루어졌다. 그때 사람들이 은밀하게 악을 행하거나 말하거나 혹은 생각만 하더라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 어떤 영리하고 지혜로운 이가 신들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해 냈던 것이다. 그는 신에 대한 믿음을 이렇게 가르쳤다. '영원히 사시는 신이 계신다. 능력으로 충만하신 그분은 정신으로 보고 들으시며, 인간을 초월하여 통찰하신다. 신의 본성을 가지신 그분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을 관장하신다.  그는 인간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그곳에 신들이 산다'고 했다. 모든 것이 그의 말대로는 아니며, 들짐승들도 나름대로 규칙에 따라 살고 있다.  이 글에서 주목할 것은 모든 인간이 오로지 이기적으로 서로를 대하고 각 개인이 폭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면 인간 공동의 삶은 있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평화로운 공동생활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들은 금지되어야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시인하는 것과 똑같은 권리를 부여받은 존재로 여기고 존경해야 한다. 그러므로 타인의 생명과 소유 그리고 타인의 관심이 존중되어야 하고 저마다 추구하는관심들이 조절 되어야 한다. 모든 구성원들이 인척관계이고 서로를 잘 아는 공동체들이 있다. 그런 부족안에서는 동정, 우정, 모자관계등에 근거하는 교류방식과 서열이 형성된다. 원숭이 같이 우리와 가까운 동물들이나 인간들은 구성원들이 서로를 잘 알 수 있는 작은 집단속에서 평화롭게 함께 살아간다.  그들은 대가족으로 강한 소속감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써 국가를 이룰수는 없다. 철학적 사유에서는 이렇게 작은 집단속에서 이루어진 공동생활의 규칙을 '친족윤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가족 크기를 넘어서는 공동체를 이루고자 할 경우에는 낯선 이들과 교류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규칙과 친족 윤리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부족끼리의 생활은 곧 부족에 소속되지 않는자들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사람들은 외부인을 경쟁자나 적으로 느끼며 거부하고, 추방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다. 인간도 그럴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친족윤리는 포괄적이고 보편주의적인 윤리로 대치되어야 한다. 인간이 설정한 법들은 임의의 타인에 대해 개인이 취하는 태도를 조절해 준다.  옛 히브리인들의 십계명을 보면 특히 도둑질, 거짓말, 살인 이 세가지 금지조항 요점은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것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이 계명들을 지킨다면, 모두가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선으로 간주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주 쉽게 말할 수 있다. '스스로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 간단한 규칙을 따르는 것이 곧 선이다. 계율들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여기서 말하는 우연히 함께 살게된 이웃은 친족, 친구 모르는 사람, 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나 여자 모두를 포함한다. 이웃은 곧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며 모든 인간은 인간답게 대접받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것은 맞다.  계율은 태도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올바르고 선한 행동을 위한 실제 지침이다.  계율 자체가 틀리거나 모순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다.

 

정의는 똑같은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지배해야 한다. 그것이 곧 법의 의미이지만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공공으로 인정된 법을 몰래 어기면서 행동한다. 인간본성의 나약함 때문이다이때 크리티아스의 말대로 어느 영리한 사람이 종교와 함께 신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해냈다.  영리한 사람은 인간이 스스로 설정한 윤리질서가 실제로는 신의 뜻이며, 윤리적 세계질서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니까 법을 위반한 사람은 세계질서를 위반한 것이며, 전지전능한 신 앞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처벌받게 될 것이다.종교는 인간을 악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논증은 여러 사상가들에 의해 주장되었다. ‘신이 존재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신을 만들어낼 것이다’ 라고 말했던 볼테르는 1755년 리스본에서 끔찍한 지진이 있고 난후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시작했다. 그렇게 신의 존재는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되었고 그제야 비로소 사람들은 법을 무시한다는 비난으로부터 무신론을 놓아주어야 만 했다.  고대 여러 입법자 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신들로부터 법을 받았다고 했다.

 

인간은 공동생활을 조절하기 위하여 스스로 법을 만들었다.  그것을 지키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평화로운 인간 공동체의 상태가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때로는 진실을 말하고 때로는 거짓말을 한다면 인간의 다른 사람의 말을 신뢰할 수없을 것이다.  그래서 계율은 '거짓말 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불치병에 걸려 즉게된 사람이 나에게 자신이 다시 건강해질 것이라는 확신의 말을 해달라고 애원했는데 내가  ‘아니 그렇지 않네, 여보게 자넨 곧 죽게될 걸세’라고 치명적인 진실을 말한다면,  나는 과연 선을 행한 것일까? 내가 단지 굶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이유로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 손을 댄다면,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계율은 그때 무슨 의미이겠는가?  또 내가 아돌프 히톨러와 같은 폭군을 살해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딸에게 들려주는 작은 철학 ( 롤란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선의 국가  (0) 2018.12.03
행복은 어떻게 계산할까?  (0) 2018.11.30
올바른 사회질서의 탐구  (0) 2018.11.28
예술, 행복  (0) 2018.11.27
신 없는 세계  (0) 2018.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