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시대에 철학은 전능하고 정의로운 유일자 神을 두고 논란을 벌였으며 ‘그들이 한 일을 보아 그들을 안다’는 그리수도교 모토에 따라서 신이 한 일인 이 세계를 판단했고, 불충분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신이 악과 불행을 허락한 이유에 대해 대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신을 믿을 수 없게 된다면, 과연 인간은 무엇을 하겠는가? 신은 존재한다. 최고 입법자의 신이 존재하므로 도덕적 질서도 마땅히 존재한다. 인간은 인간의 모든 노고와 삶에서 겪을 수 있는 불행들과 마지막 치러야 할 죽음이 그 너머에 있는 영원한 삶, 다시 말해서 모든 근심으로부터 행방되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통해서 보상된다고 믿음으로써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았고, 그보다 훨씬 전에 비빌론의 지배자도 함무라비법을 신에게서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도덕적 세계질서를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인간 공동생활을 위한 법을 스스로 설립해야 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우리 인간은 절대적인 자유를 확득하게 되고, 신의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선과 악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이것이 곧 자연적인 윤리적 세계질서를 믿지 않을 때 인간이 마주하게 되는 과제이다. 인간은 자신의 통찰과 자신의 결정을 통해 윤리적 질서를 제시해야 한다. 자신의 이성으로 법을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신에 대한 의심이 근대와현대의 철학적 사유에서 어떤 결과들을 낳는가?
근대 초만 해도 천문학이나 물리학 같은 경험과학들은 비록 교회의 입장에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일반적으로 수용된 창조신의 표상에 묶여 있다. 이러한 이념이 좌초하고 난 후, 경험과학들은 무신론적이 된다. 18,9세기는 유물론이 확산된다. 현실의 모든 것은 물질적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구성물들 사이의 관계를 기술하고 모든 사태가 야기되는 합법칙성을 찾아내는 것이 과학의 임무라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실증주의라는 이름을 얻게 된 유물론 철학은 실증적인 것, 다시 말해서 물질로 주어진 것만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神이 무의미한 낱말이라고 한 것은 실험을 통해 찾아낼 수 있는 대상들 가운데 이 낱말에 부합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가상의 존재를 탐구하는 형이상학도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경험과학들은 순수한 사실의 과학으로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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