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고되었고 인간은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해야 하며, 결국에는 죽어야 한다. 죽음은 절대적인 종말이다. 히브리인들은 페르시아 종교에서 영향을 받았다. 세계의 진행은 두 개의 대립되는 원리들간의 싸움으로 해석한다. 선한 빛의 신과 악한 어둠의 악마가 서로 싸우고 있는데, 그 중간에 있는 인간은 선한 원리의 편을 들어 선이 승리하는 것을 돕도록 부름받았다는 것이다. 원래 히브리인들의 신화는 인간의 삶이 고될 수 밖에 없는 이유만을 설명하였다. 하지만 페르시아종교로 부터 자극을 받아서 이러한 세계의 진행에 변화가 일어났다. 삶의 부정적 상태가 이제는 약한 세력이 작용한 결과로 간주되었고, 이 악한 세력도 극복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유대교의 분파에서 발생한 그리스도교는 다양한 종파들을 받아들여 세계종교로 발전하였는데, 구원이념이 중심 역할을 한다. 신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낸다. 그는 신의 말씀을 설파하면서 주위 추종자들을 모으고, 마침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신을 모독한 죄로 배척 당하는데 유대인의 경전에는 신의 아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구원자 메시아가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로마인들대로 그를 메시아로 정치 선동가로 간주하여 그를 처형한다. 신의 아들이 당하는 고난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낙원을 위하여 인간도 멱시 무언가를 해야한다. 올바르게 살아야 하고, 신에게 믿음을 고백해야 한다. 최후 심판때 신은 다시 돌아와서 선과 악을 심판할 것이다. 그때 악한 자들은 최종적으로 벌을 받고, 선한 자들은 상을 받게된다. 도덕적 세계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교는 개인들에게 매우 분명한 행동 지침을 제공한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리스도교는 이런 원리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교리의 측면에서 보면, 그리스도교 역사는 열광적 독단론자들간의 피를 부르는 끝없는 싸움이었다. 정치적 으로 제도화된 이른바 교회는 심혈을 다하여 이교도와 이단자들을 추적하고 종교재판소로 끌고가 살육하였다.
17,8세기 계몽주의시대에 철학자들에 의해 행해진 그리스도교 비판은 바로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독일 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은 ‘현자 나탄’이라는 연극에서 반지의 우화를 이야기를 한다. 그 반지는 소유한 사람에게는 행복을 가져다 주고, 다른 사람에게존경을 받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반지의 역할은 그것의 소유자가 스스로를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에 하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세형제가 반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반지는 모두가 가짜였다. 판사는 형제들에게 반지의 힘을 믿지 말고 오로지 자신의 선한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존경과 칭찬과 사랑을 얻도록 힘쓰라고 충고한다. 이 이야기속에는 철학과 도덕의 기본적인 인식이 들어있다. 인간을 결정하는 것은 신과 악마에 관한 교리들을 진실로 믿느냐 안 믿느냐가 아니라, 오로지 인간 자신의 행위일 뿐이라는 인식이다. 세 개의 반지들은 세 종교를 의미한다. 이 세 종교들을 왜곡시킨 원죄는 제일 먼저 유대교에서 등장했다. 창조주가 모든 인간을 창조하긴 했어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하고만 특별히 결속을 맺었으며, 그밖의 다른 사람들은 거기사 배제되었다고 믿었다. 이러한 선택 받은 민족의 의식이 이후 세계 역사속에서 유대 민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스런 운명의 초석을 놓은 것이었다.
그리스도교도들의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사상은 유대인들에게는 낯선 사상을 통해 기존의 체계를 바꾸었다. 그리스도교도들은 특별히 유대인들의 미움을 샀다. 그 결과 그리스도교가 유럽에서 정치, 사회적으로 승리한 후 유대인들은 사회에서 배척 되었으며,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방해받았고, 박해를 당햇다. 종교들의 자만에 대한 비판이 종교에 대한 결정적인 반론이 될 수는 없다. 종교를 옹호하는 이는 곧바로 문제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잘못 해석하고 잘못 계승한 것이며, 모든 것이 인간의 잘못이지 종교교리 자체는 반박될 수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사람들이 잘못 실천하는 것은 결함과 잘못의 요소가 이미 교리 자체속에 들어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면 세 종교들의 결함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스의 신들은 대단히 인간적이었으며 우리가 즐겨하는 표현대로 너무도 인간적이었다. 한 집안이나 자기들끼리 다투면서 질투하고, 복수하고, 증오하고, 게다가 불의를 자행하기도 하는 신들은 존경 받을 자격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철학에는 그리스민족의 종교에서 계속 공경받았던 수많은 신들 대신에 유일신이 자리 잡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세계의 창조주를 데미우르고스라고 불렀는데 이 이름은 창조자, 예술가, 조물주를 뜻한다. 데미우르고스는 정신이고 또 인격이지만, 분노라든가 격분, 시기, 복수심, 조급함 등 인간의 불완전함을 나타내는 모든 속성들은 이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무한과 태초세계의 모든 존재들은 무언가 다른 것, 자기보다 선행하는 것을 원인으로 가진다.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 조건이 부여된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원인이 앞에 원인을 갖지 않고 자기 자신의 원인 일 때 그것을 모든 것의 시작이 되는 최초의 원인으로 생각핳 수 있다.
창조는 만들어진 것으로서 시작을 갖지만 창조의 원리는 영원하다. 우리 세기의 물리학자처럼 시작을 그렇게 소박하게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우주의 시각적 시작, 즉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시초는 세계에서 인과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과 비교할 수 없는 매우 매우 특수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무에서는 아무것도 시작될 수 없다. 무에서 유로의 이행은 이미 있는 것에서 다른 것으로 이행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세계에 대해 사고할 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세계는 변화의 원리가 근본을 이루기 때문에 영원하다. 아니면 두 번째로 세계는 처음과 끝을 가지며 영원하지 않다. 두 번째 가능성은 우리가 세계를 수동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영원한 창조의 원리와 대립시킬 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엠페도클레스는 세계의 영원성을 세계의 상태들이 영원히 변화하는 것으로 보았고, 이 변화는 대립하는 영원하는 두 힘, 사랑과 미움의 작용으로 일어난다고 했다. 그리스도교도들은 타락한 천사의 신화를 빌려서 원래 유일하게 지배하는 신에게 적대자가 생긴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 적대자는 ‘빛의 운반자’ 라는 뜻을 지닌 루시퍼라는 이름의 천사다. 그는 타락하여 악과 어둠의 주인인 사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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