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사고를 명명하는데 중요한 두 개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첫째는 존재론이라는 개념이다. 존재론이란 존재하는 것에 대한 학설이다. 이미 우리가 세계, 우주, 또는 코스모스라고 부르는 존재자 전체에 대해서 사고하였고, 존재자의 전체는 시작을 가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존재자는 생성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우리가 생성하고 소멸되는 것이다. 존재론은 경험과학의 분과가 아니라, 논리학이나 수학과 같이 순수 이론적 분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형이상학’이라는 책에서 체계적으로 논하였다. 이 제목은 '물리학 다음에 오는 책'이라는 뜻이다. 형이상학이 다루는 대상들은 물리학이 다루는 대상들과는 다른 종류이기 때문이다. 즉 물리학은 세계의 개별 사물들을 연구하지만, 형이상학이 연구하는 것은 모든 사물들 전체이다. 물리학은 개별 사물들의 원인을 묻고, 형이상학은 존재자 전체의 근원을 묻는다.
그리스도교에서 형이상학이 중요했던 것은 신에 대해 논할 때 형이상학의 도움으로 그 이론적 근거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의 신학자들은 형이상학의 이론적 숙고를 이용하여 신을 증명하고자 했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 철학을 하녀처럼 데려다 사용하였다. 그리스 중세 철학자들의 표현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철학은 신학의 하녀다 ’ 그리스도교의 신은 긍정적, 부정적 속성을 모두 가진 아버지 형상이다. 그는 사랑하고, 분노하고, 징계하고 용서하는 아버지 역할을 맡고 있다. 철학자의 신은 다채로운 인격제가 아니다.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신이 영원한 법칙에 따라 경이롭게 움직여 돌아가듯 우주로서 이 세계를 만들었다는 이 한가지 밖에 없다. 스피노자는 ‘모든 것은 神적이다. 모든 것 속에 神이 있다’라고 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양자 택일을 내포한다. 말하자면 '나는 자연이 영원하다'고 결정하거나, '신이 영원하다'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철작자들은 신을 등지고 자연쪽으로 결정했다. 신을 부정한 이유는 만일 유일자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경이롭게 이루어진 세계 창조자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괴로움, 불행, 재난과 죽음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유일한 선한 신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있는 악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신을 비난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전지전능한 정의의 신이 이 세계에 악을 공공연하게 허락한 것을 비판하였다.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이 세계는 가능한 한 최선의 세계이며, 더 나은 세계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신에 대한 변론을 시도하였다. 그는 세계에 있는 행복의 양은 최대치로 불행의 양은 최소치로 정해진 것이라 했다. 라이프니츠의 신은 '가능한 한 최소의 비용을 지불하여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최대의 결과를 얻고자 하는 상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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