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들의 크기는 도대체 어느 정도 일까? 우리는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처럼 모든 측정 단위롤 다른 단위로 환산할 수 있다. 1 센테미터는 어느 정도 크기일까? 간단하게 자를 대보면 된다. 센티미터 자는 사람들이 이미 정해 놓은 착도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척도를 확정했으며 이 척도를 이용하여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판단에 따라 마음대로 기준을 정하며, 기준만 있으면 곧 바로 세계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고정된 기준점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다. 다시 말해서 그 기준점을 우리의 목적과 필요에 따라 결정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바로 그 기준점이며 우리들이 곧 모든 사물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와 상관없이 이미 고정되어 있는 어떤 기준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과학자들 사고의 틀속에서 그 점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가장 작은 단위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다.
선분 AB를 중심에서부터 반으로 나누고, 다시 반으로 나누고, 계속해서 무한분의 1까지 나누어질 것이다. 수학에는 가장 작은 크기도 가장 큰 크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가장 큰 것으로 주어진 어떤 수에 하나만 더하면 그 다음으로 큰 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장 큰 것으로 주어진 어떤 수에 하나를 더하면 그 다음으로 큰 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무한히 큰 크기와 무한히 작은 크기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우리의 크기가 절대적으로 어느 정도인가에 상관없이 우리는 언젠가 무한히 작은 것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무한히 큰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에게는 눈 깜짝할 순간이 다른 동물에게는 긴 시간일 수 있다. 가장 작은 시간 간격이 있을 수 있을까? 현재 알려져 있는 입자보다 더 작은 것이 있다면 지금보다 더 작은 시간단위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 작고 우리의 수명이 너무나 짧아서 우리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생물들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매번 발견되는 것이 최소의 크기가 아니라 더 작은 것들의 조합으로 밝혀진다면, 어째서 그와 비슷한 더 작은 구조들이 계속해서 발견되지 않겠는가? 우주 속에는 넓게 텅 빈 영역도 있고, 많은 은하계들이 모여 있는 부분도 있다. 천문학자들은 그러한 모양이 속에 구멍나 있는 '스위스 치즈'를 닮았다하여 익살스럽게 우주의 스위스 치즈라고 일컫기도 한다. 무한히 넓고 큰 세계 속에서 우리의 은하계들은 원자만한 크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관찰 능력을 넘어 계속해서 펼쳐져 있는 우주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무한히 거대한 우주속에서 층층이 성립되는 구조들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사실 이다. 우리 은하계들이 원자의 입자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대한 세계에서는 엄청나게 크고 느린 생명체와 인간종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이 비하면 우리가 엄청나게 작고 우리의 삶이 너무 짧아서 그 생명체들이 우리를 공간적, 시간적으로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접촉할 수가 없다. 거꾸로 우리세계에 있는 더 작은 세계에 대해서도 같은 조건이 성립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소세계 거주자들 크기가 무한히 작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인지하지 못한다. 물리학자들은 멀리 떨어진 항성계에서 빛의 적색이동을 관찰하였다. 빛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올수록 그 빛은 더욱 뚜렷이 붉은 색으로 변한다. 이것을 도플러 효과라 불렀고,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는 운동의 징후로 해석했다. 그들은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거슬러 계산하여 우주 폭발의 처음 시기를 찾아내려고 했다. 그들은 이 폭발의 시작과 세계의 시작을 동일하게 본 것이다. 그들은 공간과 시간이 폭발의 시작과 함께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속에서 이른바 블랙홀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 속에서는 모든 물질, 별들 까지도 끌려들어가서 소멸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질량은 인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거대한 질량이 어디선가 모이면 그것은 주변에 있는 모든 물체를 끌어당기게 된다. 이 질량이 계속해서 커지면 갑자기 원자들이 와해된다. 우리는 원자를 아직은 핵(양자)과 위성(전자)들로 구성된 작은 태양계로 생각하고 있다. 원자들의 와해는 원자속에 있는 입자들 사이의 간격과 원자들 사이의 간격이 사라져 버림을 뜻한다. 원자속의 사이 공간들이 사라지면 그것은 엄청나게 수축할 수 있고, 그럼에도 인력을 지닐 수 있다. 블랙홀은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우주 전체를 먹어치우고 말 것이다. 하나의 블랙홀에 있는 인력은 심지어 빛까지 그 속에서 사라져 버릴 정도로 엄청나게 크다.
물리학자들이 그 같은 불랙홀들을 발견했다고 믿음으로써 우주에서는 폭발과 팽창뿐만 아니라 붕괴와 수축도 관찰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만 했다. 그렇다면 결국은 우주전체가 다시 블랙홀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또 폭발에 의해 블랙홀로부터 새로운 우주가 탄생할 수도 있다. 우리 세계가 맥박처럼 번갈아서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우주 모형은 사랑과 미움의 대립적인 두 힘과 몇가지 원소를 상정했던 엠페도클레스를 상기시킨다. 그는 우주안에서 원소들의 결합(사랑)과 분리(미움)가 영원히 교차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영원히 변화하는 우리의 현실이 탄생한다고 주장하였다.과연 세계의 시작을 발견할 수 있을지 철학적으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만물에는 원인이 있고 처음에 있다는 일반적인 주장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들에 대해서는 타당한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속에서 인간에게 나타난다. 공간과 시간의 사고범주를 사용하여 인간은 모든 대상들을 파악하고 기술할 수 있다. 하지만 인과성 개념을 포함하여 우리의 모든 사고 형식들은 우리의 감각들로 경험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그 타당성이 인정된다. 그리고 우리의 세계 속에 현존하는 것들은 모두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넘어서려고 할 때 우리의 사고 범주들은 그것을 거부한다. 우리는 기하학에서 하나의 직선이 양방향으로 무한히 뻗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직선을 그리는 종이의 면은 유한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직선의 작은 일부만을 제시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영역에서도 직선이 무한성 속에 있음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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