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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본성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이한음

종교

신앙을 갖고자 하는 성향은 인간정신중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힘이자 ,아마 인간 본성중에서 근절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그것은 수렵채집인 무리들에서 사회주의 공회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에서 뚜렷이 나타나는 보편적인 사회적 행동이다. 모든 종교는 대체로 국가에 의해 추진될 때는 억압적이 된다. '생태학에는 최대 경쟁은 요구사항이 동일한 종에서 일어난다.' 는 가우스의 법칙이 있다. 비슷한 의미에서 종교가 거의 베풀지 않는 형태의 이타주의가 있는데, 그것은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이다. 종교끼리의 적대감은 사회가 붕괴될 때 강화된다. 정복자의 종교는 칼이 되고, 피정복자의 종교는 방패가 된다.

 

인간 유전자들은 신경, 감각, 호르몬계의 기능을 프로그램함으로써 학습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유전자들은 어떤 행동이 성숙과 다른 행동 등의 학습규칙을 속박한다.

 

헨리 베르그송은 '감정충족 장치 뒤에 숨어있는 최종 책임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차린 사람이었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지닌 극도의 유연성은 강점이자 위험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만일 각 가족마다 각자의 행동 규칙을 제정한다면, 전체 사회는 혼돈으로 붕괴될 것이다. 높은 지능과 특이성이라는 해체시키는 힘과 이기적인 행동에 대항하기 위하여, 각 사회는 자신의 규약을 만들어야 한다. 넓게 보면 그 어떤 사회규약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임의의 법조문이 작용한다면 조직은 불필요한 부당함 때문에 비효율적이되고 훼손되기 쉽다.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란 어떤 다른 통로가 아닌 특정한 통로를 따라 발달하도록 사회적 행동을 인도하는 학습규칙들, 감정 강화요인들, 호르몬 고리들이다. 인간본성은, 이미 거의 사라지고 없는 환경인 빙하기 수렵채집인들의 세계에서 유전적으로 특수한 적응을 거친 결과로 나온 일종의 혼합물이다.

 

한 개인의 DNA는 그 세대의 모든 조상들이 거의 동등하게 기여한 결과이고, 마찬가지로 그것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도 모든 자손들에게 동등하게 배분될 것이다.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것은 진화 시계가 단 한번 똑딱 움직이는 기간에 불과하다-현대 영국인 한명을 출현시킨 그 유전자 풀은 전 유럽, 북 아프리카, 중동, 그리고 더 멀리까지 퍼져 있음을 알게 된다. 그 개인은 이 풀에서 꺼낸 유전자들의 일시적 조합이며, 그 유전 물질은 곧 다시 그 풀로 용해될 것이다. 자연선택이 자신과 가까운 친척들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방향으로, 개인들의 행동에 작용해 왔기 때문에 인간본성은 우리를 이기심과 종족주의 명령에 복종시킨다.

 

우리 사회는 포유동물적 계획에 토대를 두고 있다. 즉 개인은 우선 자신의 번식에 성공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이차적으로 가까운 친족들을  번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다음 마지못해 하는 협동은 집단 구성원 이익을 향유하기위한 타협을 의미한다. 이성을 지닌 개미는-개미를 비릇한 사회곤충들이 진화하여 고도의 지능을 갖게 되었다 가정하자-그런 순서를 생물학적으로 불건전한 것이라고, 개인의 자유라는 개념자체를 본질적인 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경제나 사회문제가 무엇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런 관점을 엘리트주의라고 반대할 것이다. 그들이 반대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사람들이 사하라 사막 주변의 사바나와 인도에서 기아에 시달리고, 아르헨티나와 소련의 감옥에서 쇠약해지고 피를 흘리는데, 그 무엇을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답 대신 그 질문을 다시 해보자. 우리는 깊이 그리고 항상 알고 싶어한다. 왜 우리는 걱정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해결된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모든 정부가 천명한 목표들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동물적인 생존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인간 완성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종교, 신앙의 정신적 과정들이 -개인 및 집단 동일성에의 헌신,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향한 구애, 신화 창조 등이- 수천 세대의 유전적 진화를 거쳐, 뇌신경 기구 속으로 통합된 자기 만족적 요소들의 프로그램된 성향들을 나타낸다는 인식하에 수정된 과학적 휴머니즘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향들은 강력하고, 근절할 수 없고, 인간이라는 사회적 존재의 중심에 서 있다.

 

인간의 유전자는 생물이 지닌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것은 털 없는 원숭이에게 적합한 가능성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여왕벌을 보호하기 위해 침입자에게 무작정 침을 꽂고 죽는 벌들의 이타주의 행동은 인간의 가능성 속에 들어 있지 않다. 인간에게는 인간 나름의 이타주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만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이 속해있는 영장류와 포유동물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타주의는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고귀한 수단이며, 단지 생물종마다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뿐이다. 이렇게 인간에게 내재된 가능성들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이런 인식이 인간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리라는 것, 바로 이것이 이 책의 지향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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