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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본성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이한음

준비된 학습

인간의 창조는 열 달 동안 진행된다. 기능적으로 볼 때 태아는 근육과 피부라는 껍질로 둘러싸인 소화관과 같다. 신체 각부위는 이제 막 형성된 심장의 율동적인 풀무질로, 압력이 가해진 핼액이 폐쇄 혈관을 돌게 되면서 끊임없이 신선해진다. 한정된 신체활동은 호르몬과 신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조절된다. 생식기관은 휴먼 성태에 있다. 이 조화의 사령탑은 뇌에 자리하고 있다. 뇌의 무게는 500그램이고 뇌의 미세구조는 지구에서 생산된 그 어떤 기계보다 복잡하다. 뇌에는 약 100억개의 단위 세포인 뉴런들이 정확히 배치되어 있고, 각 뉴런은 수백 혹은 수천 개의 다른 뉴런과 연결 되어 있다. 뇌에서 뻗어 나온 엄청난 수의 신경섬들은 척수를 통과하고, 거기에서 몸의 다른 기관들에게 양방향으로 정보와 지령을 전달하는 다른 신경들과 연결된다. 뇌와 척수를 포괄하는 중추신경계는 망막의 간상체로부터 피부의 압력 감지소체에 이르기까지 10억 개 이상의 감각신호들로부터 전기신호를 받는다.

 

이 경이로운 로봇은 부모의 보호 아래 사회에 안착한다. 급속히 축적되는 경험은, 곧 그것을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는 개체로 전환시킬 것이다. 그 후 사회적 행동에 필요한 필수 요소들- 언어, 짝짓기, 자아상실감, 사랑, 민족성, 기타 인간 특유의 항목들-이 첨부 될 것이다. 그러나 뉴런들의 배선, 즉 유전자 속에 뚜렷이 부호화 되어 있는, 사회적 발달을 이끌 내재된 지령들은 어느 범위까지 작동 할 것인가?  진화만으로 구축되어온 배선도가 과연 학습을 통해, 그 어떤 사회적 존재로 적응할 수 있게 해주는 만능장치로 전환될 수 있을까? 

 

유전자 결정론이란 주어진 한 벌의 유전자로부터,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는 하나의 행동 양식에 도달하기까지 줄달음 치는 것을 의미한다. 모기의 일생은 이 좁은 개념에 완벽히 들어맞는다. 번데기에서 날개 달린 모기가 나올 때까지, 즉 유기물질로 오염된 물에 수정란을 낳도록 유도하는 일련의 복잡한 전략을 완성하기까지 겨우 며칠이 걸릴 뿐이다. 암컷과 수컷 모두 신속하게 일을 시작한다. 암컷의 날개짓 소리는 인간의 귀에 너무나 거슬리겠지만, 수컷에게는 사랑의 노래다. 과거에 경험한 적도 없으면서 수컷은 소리를 향해 날아간다. 그 일생은 유전자가 미리 규정해 놓은 엄격한 군대식 질서에 따라 진행된다. 모기는 자동장치다. 그 이상의 것이 될 여지가 없다. 그 작은 머리에 든 신경세포의 수는 10만개 정도에 불과하고 신경세포가 늘어나면 모기의 체중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겨우 며칠이라는 기간내에 자신의 생활사를 정확하고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유일한 방법은 태어날 때부터 알을 낳는 마지막 행동을 하기까지, 유전자들이 짜놓은 엄격한 행동 순서를 신속하고 오류없이 펼치는 것, 즉 본능으로 살아가는 것 뿐이다. 반면 인간 정신 발달의 통로들은 우회적이고 가변적이다.

 

인간의 유전자들은 하나의 형질을 규정하기 보다는 어떤 형질의 배열을 발달시키는 능력을 규정한다. 어떤 유형의 행동은 그 배열이 한정되어 있고 그것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그와 달리 배열이 광범위하고 극복하기 쉬운 형질들도 있다. 한정된 행동의 한 예는 주로 쓰는 손이 어떤 손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사람은 오른손잡이가 될지, 완손잡이가 될지 미리 정해져 있다. 인간행동의 발달지형은 훨씬 더 폭넓고 더 복잡하지만, 그래도 지형인 것은 틀림없다. 때로 계곡들은 한두 번 갈라지기도 한다. 개인은 왼손잡이나 오른손잡이가 될 수 있다. 만일 그 자신을 왼손잡이로 예정해 놓은 유전자나 다른 초기의 생리학적 요인을 지닌 채 출발한다면, 그 발달 통로쪽의 골이 더 깊이 패인 것을 볼 수 있다. 사회적 압력이 전혀 없다면 대부분 공은 왼손잡이 통로로 굴러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에게 오른손을 쓰도록 훈련을 시킨다면, 공은 오른손잡이의 더 얕은 통로로 넘어갈 수 있다.

 

유년기가 기계적 암기를 통해 영어문장을 학습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 못된다는 것은 수학적 시뮬레이션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침팬지등 다른 영장류의 새끼와 달리 인간의 유아는 웅얼거리고, 단어들을 발명해 내며 의미를 시험하고 예상 가능한 순서에 맞게 급속히 문법 규칙을 습득한다.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는 아직 앞을 못보고 배로 기지도 못하고 대체로 무기력하다. 그렇지만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몇몇 한정된 영역에서 새끼고양이는 고도의 학습능력을 지닌고 있다. 새끼 고양이는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젓 줄 어미가 있는 곳까지 냄새만을 추적해 찾아 기어가는 법을 습득한다. 새끼는 냄새나 촉감의 도움을 받아 어미의 배를 따라 젖꼭지까지 가는 길을 기억해 낸다.

 

인간의 정신은 어떤 특정 대안을 본능적으로 선택하고, 유아에서 어른으로 자동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하도록 정해진 신축적인 계획표에 따라, 육체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촉구하는 주변 환경을 빈틈없이 경계하는 탐색자, 즉 자치적 의사결정기구로 기술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오랫동안 해온 선택의 축적, 그것들의 기억, 앞으로 해야 할 선택에 대한 심사숙고, 각인된 감정들의 재경험, 이 모든 것이 정신을 구성한다. 한 개인의 의사결정은 그를 다른 인간과 구별해 주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결정에 따라 붙는 규칙들은 모든 개인이 내린 결정들을 넓게는 많은 부분을 중첩시키고 그리하여 '인간 본성'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에 충분하고,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근친상간의 금기도 준비된 학습의 또 다른 주요사례다. 그 금기는 단순한 결합을 배제하는, 더 일반적인 규칙의 특수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형태의 강한 결합관계가 형성될 때, 그들은 다른 형태의 결합관계를 만들기가 감정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다.  교사와 학생은 학생이 스승을 능가한 뒤에도 동료가 되기 어렵고, 엄마와 딸은 시간이 흘러도 원래 지녔던 감정 그대로 유지한다. 그리고 부녀, 모자, 형제, 자매는 일차결합이 거의 모든 것을 배제한다. 따라서 근친상간 금기는 인류문화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즉 사람들은 배제된 결합관계를 학습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가장 유리한 관계를 학습하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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