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힐링 에세이

걷기의 정신

 

걷는다는 것은 지극히 본질적인 것에만 이 세계를 사용한다는 것을 말한다. 가지고 가는 짐은 얼마 안되는 추위에 얼어죽지 않을 정도의 땔감, 방향을 가늠하는 도구 , 양식 혹은 무기, 그리고 물론 약간의책 등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제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이상의 군더더기는 괴로움과 땀과 짜증을가져올 뿐이다. 걷는 것은 헐벗음의 훈련이다. 걷기는 인간을 세계와 직접 대면하게 만든다.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다 손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간다. 외면의 지리학이 내면의 지리학과 하나가 되면서 우리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을 평범한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길을 걷는 것은 때로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리저리 걷다보면 자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여유가 생기게 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걷는 것에 의해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트이고, 추억들이 해방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오솔길 모퉁이에서 마주친 어느 늙어버린 얼굴로 인하여 걸음은 잠들어 있던 시간을 깨워 일으킨다.

 

걷기는 삶의 불안과 고뇌를 치료하는 약이다. 한발한발 거쳐 가는 길은 절망과 권태를 불러일으키는 미로이기 쉽지만,  지극히 내면적인 그 출구는 흔히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시련을 극복했다는 느낌, 혹은 희열과 재회하는 순간이다. 온몸이 피로에 취하고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저곳으로 간다는 보잘없지만 명백한 목표를 간직한 채 여전히 세계와의 관계를 통제, 조절하고 있다.

 

걷기는 나르시스적인 방식이 아니라,  사는 맛과 사회적인 관계 속에 제자리를 찾게 함으로써 인간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길은 걷기 체험을 통해서, 혹독한 고통을 통해서 근원적인 것의 중요함을 일깨우고,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내면의 지름길을 열도록 해준다.

 

 

'힐링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을 걷는 사람들  (0) 2018.04.27
마음열기  (0) 2018.04.25
침묵  (0) 2018.04.23
걷는즐거움(2)  (0) 2018.04.18
걷는 즐거움(1)  (0) 2018.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