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힐링 에세이

자신의 그릇만큼

 

올해는 봄이 더디다이곳 산중에는 엊그제가 춘분인데도 아직 얼음이 풀리지 않아 잔뜩 움추린 채

봄 기운을 그리고 있다. 머지 않아 꽃바람이 올라오면 얼음이 풀리고,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어김

없이 계절의 순환에 따라 바뀔 것이다. 사람들도 그 때를 알고 변할 수 있어야 한다. 바위처럼

그 자리에 요지부동한다면 그 자리에 삶의 생기가 스며들 수 없다.

 

우리가 지난 날 어렵게 살아온 시절에는 남이 무엇을 가졌다고 해서 그렇게 기가 죽거나불안해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활이 대체로 고만고만해지면서 약간의 차이만 나도 눈에 불을 켠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는 비교적 풍요롭게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 구성원들이 종종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이따금 삶에 대한 회의에 빠진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부富라고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부는 욕구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차지하거나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할 때 우리는 가난해 진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한다면, 실제로 소유한 것이 적더라도 안으로 넉넉해 질 수 있다우리가 적은 것을

바라면 적은 것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우리 인생이

비참해진다.

 

나이 들어가는 탓인지 남들이 곤히 자는 이른 시각에 나는 곧 잘 깨어있다. 둘레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개울은 두껍게 얼어 붙어 흐름의 소리도 멈추었다자다가 뒤척이는지 이따금 뜰에 가랑잎

구르는 소리만 바스락거릴 뿐 이것이 적적요요한 자연의 모습이다.

 

산중에 홀로 사는 우리 같은 부류들은 무엇보다도 자가 자신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함께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게으름이란 무엇인가? 단박에 해치울 일도 자꾸만 이 다음으로 미루는

타성이다그때 그곳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그날의 삶이다그와 같은 하루하루의 삶이 그를

만들어 간다. 이미 이루어진 것은 없다. 스스로 만들어 갈 뿐이다.

 

현대 의술로도 소생이 불가능한 경우라면 조용히 한 생애의 막을 내리고, 거들고 지켜보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될 수 있으면 평소 낯 익은 생활공간에서 친지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삶을

마감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병원에서는 존엄한 한 인간의 죽음도 한낱 업무로 처리되어

버린다. 마지막 가는 길을 낯선 병실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맞이한다면 결코 마음 편히

갈 수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듯이, 죽음도 그 사람다운 죽음을 택할 수 있도록 이웃들은

거들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찍부터 삶을 배우듯 죽음도 미리 배워두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들 자신이 맞이해야 할 엄숙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힐링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슬지 않는 삶  (0) 2018.02.08
우리가 살만한 곳은 어디인가?  (0) 2018.02.07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0) 2018.02.05
삶의 기술  (0) 2018.02.02
아름다운 마무리  (0) 2018.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