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삶의 매듭들이 지어진다. 그런 매듭을
통해 사람이 안으로 여물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산중에는 고요함과 거룩함이 있다. 특히 아침나절의 산은 더욱 아름답고 신선하다. 들이마시는 공기
에는 숲의 향기와 밤새 내린 이슬이 배여 있다. 이와 같은 신선한 아침을 잘 맞이 할 수 있어야 그날
하루의 삶도 알차다. 이 거룩한 시간을 신문이나 방송 등 너절하고 잡스러운 바깥소리로 얼룩지게
한다면 그것은 고요와 거룩함의 모독이다.
수행자는 무엇보다 안팎으로 밝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 밝음이 이웃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만약
수행자가 어둡고 음울하다면 그 어둡고 음울함을 털어버리는 일을 제1과제로 삼아야 한다. 수행자는
앞뒤가 툭 터여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안에 티끌이 쌓이지 않는다. 그 맑고 투명함이 이웃에게
그대로 비춰진다.
우리는 참으로 소중한 것은 배우지 못하고 어리석은 것들만 배워 왔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이곳에서 깨어있음이다. 삶의 기술이란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깨어 있는 관심이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결혼을 한 이상, 어떤 사고에도 만반의 대비 되어 있어야 한다. 인간사에서
가장 큰 사고(결혼)가 일어났는데 그 밖의 다른 사고야 모두 경미한 접촉 사고에 불과할 것이다.
결혼 생활이란 끝 없는 인내와 깊은 이해심이 받쳐 주어야 한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한다.
사물을 보는 눈도 때에 따라 바뀐다.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 순간 지켜 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약육강식을 비교해 보면 산업사회쪽이 훨씬 치열하다. 농경사회는 서로 도와
가면서 살아야 하는 이웃이 있어 인간적인 여백이 두텁다. 그러나 산업사회는 서로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 경쟁으로 인해 비정하고 살벌하다.
인디언들은 빨리 일을 끝내고 자유로운 시간을 더많이 갖게 된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백인들은
자기네들처럼 그들이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자랄까봐 미리
쌓아두는 그 마음이 곧 결핍 아니겠는가? 그들은 그날그날의 삶을 즐길 줄 알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지 않았다.
산중에 살면서 가까이 대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것보다도 우선 책이다. 홀로 지내면서도 무료하거나
적적하지 않는 것은 좋은 친구인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은 나에게 삶의 기쁨과 생기를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나를 안으로 여물게 한다.
한 해가 저무는 길목에서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 본다.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과연 나 자신답게 살아 왔는지 묻는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그때그때
만나는 이웃들을 어떻게 대했느냐로 집약될 수 있다. 따뜻하고 친절하게 맞이 했는지 아니면
건성으로 스치고 지나왔는지 반성한다.
우리 시대의 고질병인 과속문화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성급하게 달려가는 잘못된 버릇부터 고친다.
자기 차례를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그 안에서 시간의 향기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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