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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에세이

산중일기- 자비

 

내 얼굴은 이 알 수 없는 미지의 인생극장에 배우로 찾아온  내가 잠시 빌려 쓴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내 얼굴은 빌려 쓴 이름과 더불어 내가 빌려 입은 껍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내 얼굴 모습이 잠시 빌려

탈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소중히 보관하고 간수해야 할 가면 무도회의 마스크임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이웃, 모르는 이웃으로부터 은덕을 입는다. 우리가 이렇게 무사

하게 살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유형무형의 도움인 것 같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처럼 이웃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나 역시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처럼 사람은 남에게 도움을 주고,또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회적 존재이다.

 

따라서 도움을 주고 받는 행위는 우리가 숨을 들어마시고 내뱉는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에게 베푸는 이런 보시 행위가 불균형을 이루는 것은 우리가 남으로부터 받은 은덕에 대해서는 고마움을

모르고, 자신이 베푼 행위에 대해서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이웃에게 베풀어도 그것을 기억

하고 있는 한 그것은 자비가 아니다.  그런 행위는 생색에 지나지 않는다. 자비가 생색으로 전락될 때

은혜입는 사람은 고마워하지 않고, 굴욕을  느낀다.

 

남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은 받은 사람으로부터 되갚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복덕을

지은 것이다. 남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자비를 베푼 셈이다남에게 베푼 자비는 베푼

순간 잊어버려야 한다. 부모들도 자기 아이를 키운 은혜를 잊어야 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집착은 가족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

 

남에게 베푼 보시에 집착하기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남에게 입은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다. 우리 하루하루는

보이지 않는 이웃으로부터 베풀어지는 은혜의 살아있는 현장이다주위의 보살핌과 이웃의 은덕이

없다면, 우리는 단 한 시간도 살수 없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아이에게 가장 미안한 점은 내가 지나치게 감정적이었으면 때문에

일관성이 없었던 변덕쟁이라는 점이다. 모든 것이 내 기분대로였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나는 아이들을

귀여워하다가 기분이 나쁘면, 아이들에게 폭군으로 군림했다.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해서 나는 결코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자상한 아버지란 잔정이 많은 아버지를 뜻

하며, 잔정이 많은 아버지는 감정적인 아버지라는 뜻에 불과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훌륭한 아버지는

자상한 아버지가 아니라, '엄격한 아버지'인 듯 싶다. 엄격한 아버지가 되려면 먼저 자기자신에게 엄격

해야 한다. 일관된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곳이라 할지라도 아버지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절대로 하지 않을 때에만 엄격한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다.

 

요즘은 머리맡에 많은 책을 두고 지내나 책이 당기지 않아  별로 읽지 않게 된다활자로 된 책에 입맛을

잃은 것처럼 식욕이 당기지 않는다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말로 누워 있으니 명상이 깊어지겠다. 하고

인사치레 하지만 이상하게 뭘 생각하기도 싫고,  생각의 깊이도 얕아만 지고 있다묵상의 세계는 깊은

우물과도 같아서 의식의 두레박을 타고 사고의 우물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두레박을

던지고 싶지도 않다.

 

하는 일이라고는 아침부터 밤까지 텔레비를 보는 것 뿐이다텔레비전도 켜 두었을 뿐 프로그램에 열심히

빠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눈으로만 쫓고 있을 뿐이다. 이러다가 바보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롤 머리는

텅비어 있다. 느는 것은 잠뿐이어서 아침에도 9 되어서야 눈이 떠진다. 그러고도 잠이 모자라서

낮잠을 기를 쓰고 잔다.

 

한가지 하는 일이라고는 지낸 50년 과거 세월을 돌이켜 보는 일뿐이다. 그것도 무슨 추억에 젖어보고

싶다거나 과거를 떠울려 반성해 보겠다는 생각도 아니다.  누워 지내다 보면 자연 지난 세월이 떠오른다.

어릴때의 기억, .고들학교 시절의 기억,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의 기억   머리속은 온통 이런 기억들의

파편들 뿐이다그런 것을 떠올릴 때마다 한가지 느껴지는 감상은 세월이 참빠르다는 느낌 한가지 뿐이다.

 

병석에 누워지내는 동안 아무일도 하지 못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조금 달리 생각

보면 이 시간은 내게 단순히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그간 휴식을 모르고 일해 오던 내게 반성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결국 버려지는 시간은 없다. 아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그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보내고 있든 다만 우리 스스로 그 시간을 채념한 채 버리고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에 모든 순간 모든 시간은 의미 있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