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스님이 찾아와 중국의 선사禪師 동산에게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이를 어찌 피해야 합니까?’
이에 동산이 대답한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
그러자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이에 동산이 대답한다.
‘추울 때 그대를 더욱 춥게 하고, 더울 때 그대를 더욱 덥게 하는 곳이다.’
생각할 만한 화두다.
우리는 더우면 본능적으로 더운 곳을 피하려 한다. 더운 곳을 피해 에어컨을 틀거나 선풍기를 틀거나
부채질을 하면 더위가 일시적으로 가실 수 있을지 모르나, 더위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고통이나 불안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그 고통을 잊으려고 술을 마시거나, 다른 방법으로 이를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일을 피한다고 해서 그 고통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고통을 피할 곳이 아니라, 고통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 니체는 실존
철학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저서에서 “나를 죽이지 않는 한 모든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할 뿐이다” 라고
했다. 인생에는 돌아가는 것보다 당당히 맞서야 하는 것이 많다. 그것이 죽음의 공포이든,
불안이든, 허망이든.
불교에서는 육신을 地,水,火,風의 네 요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티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땅에서 난 것은 땅으로 돌아가고, 물에서 난 것은 물로 돌아가고, 불에서 난 것은 불로
돌아가며, 바람에서 난 것은 바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육신은 다만 영혼을 감싸는 의상에 지나지
않는다. 죽으면 우리는 그 옷을 허물로서 벗게 된다.
탐욕과 욕망은 옷에 매달린 주머니를 채우는 일이며, 명예와 권력은 옷에 계급장과 훈장을
붙이고 다니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쾌락과 애욕은 옷에 물감을 들이고, 단추를 다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바람에 잠시 일어났다 눕는 풀처럼 짧은 목숨에 아우성 치고 있는 동안에도 그곳엔 천년 전부터
바람이 불고 있고, 천년 전의 물이 계곡을 타고 흘러내려오고 있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바람에
불려 떨어지는 나뭇잎 한 조각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감히 누구의 눈을 빌려 타인의 죄를
보고, 우리가 감히 누구 입을 빌려 그것을 범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초개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가 세속의 질곡에 갇혀 작은 것 하나 더 쥐려고 아우성치고 있는 동안, 천년 내내 불어오는 바람이
사찰의 풍경소리를 흔들고 간다.
마음이 울적해지면 마음속 헛간엔 쓰레기같은 헛것 들만 가득차있다. 이것을 치워야지. 이것을 어떻게
해서든 쓸어내야 하는데 하면서도 불안과 증오심과 탐욕과 신경질로 가득차 있다.
절문을 활짝 열어놓고, 대웅전도 활짝 열려있고, 마당 뜨락엔 붉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건만. 절앞
뜨락은 햇살만 가득할뿐, 그저 적적하고 그저 무사무사하다. 네가 모두 알아서 하라는 듯 부처님은
연심 웃고만 계신다.
침묵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침묵보다 말을 하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문을 걸어잠거고 깊은 산속에 숨어있는 것보다 사람들 속에서 함께 어울리되 물들지
않음이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노을 비낀 빈 절안에서
무릎안고 한가히 졸다
소소한 가을 바람에 놀라 깨어보니
서리 친 단풍잎만 뜰에 가득해.
시끄러움이 오히려 고요함인데
요란스러운들 어찌 잠이 안오랴.
고요한 밤의 빈 산달이여
그 광명으로 한바탕 베개하였네.
일없음이 오히려 할일 이거늘
사립문 걸어닫고 졸다가 보니
그윽이 새들은 나의 고독함을 알고
창 앞에 와 어른거리네.
깊고 조용한 저 산에
구름을 베개하여 조는 내 행색
에헤야 좋을시고! 그 가운데 취미를
제멋대로 온 세상에 놓아두리라.
이 마음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곤하면 잠자는 것
고금으로 전한 이 구절
자못 이 문전門前에 분명하구나. (선승 경허의 법어집에 나오는 禪詩)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이 사회는 원하지
않고, 자본주의 경제의 거대한 메커니즘속에서 우리는 모두 부품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
하느라 삶을 조금씩 망각하고 있다.
나는 요즘 내 집을 산속에 틀어박힌 절처럼 이 사회의 망망대해에 고립된 섬으로 만들어 놓고,
그곳에 칩거하며 느림과 무사의 철학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에서 나는
모든 이들을 만나러 조용히 내 삶의 순간들을 더듬어 가고 있다.
--- 산중일기 (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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