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 늙어버릴 것을 저 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 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에는 친구가 몇 명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애기 저 애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을 향해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제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 아예 입을 막아주소서.
제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가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애기를 기꺼이 들어주는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마는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 기억력을 좋게 해주시고 감히 청할 수는 없사오나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저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 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다고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는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곧 닥쳐올 노년기에 내가 심술궂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되는 것이 희망이다. 제발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는 것이 내 소망이다. 또한 무엇에나 올바른 소리 하나쯤은 해야 한다고 나서는 주책없는 늙은이,
위로받기 위해 끊임없이 신체의 고통을 호소하는 그런 늙은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 그리고 하나 더 바란다면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한다 하더라도 변치않는 진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죽는 날까지 간직할 수 있는 것.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난 순간부터 자기만이 겪고, 자기만이 경험하는 독특한 무대 위의 배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쾌락의 노예가 되거나 돈과 명예와 권력과 같은 욕망의 지배를 받아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 무대 위에서 술을 주인공으로, 돈을 주인공으로, 권력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비참하게 종 노릇의 조연으로 말단 배우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상한 일이다. 서울거리의 우리들 모두 각자 다른 빛깔의 옷을 입고, 각자 다른 형태의 옷을 입고 형형색색의 화장을 하고,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새 구두를 신고, 액세사리를 치령치렁 달아도 그 얼굴이 그 얼굴처럼 보이는데. 개성을 만드는 것은 화장이 아니다. 옷이 아니다. 색이 아니다. 쌍꺼풀 수술이 아니고 헤어스타일이 아니다. 유행이 아니다. 지워지지 않는 변하지 않는 개성을 만드는 일은 자신의 마음의 텃밭을 가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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