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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생물학이다(에른스트 마이어,

통합생물학의 시대(최재천)

통합생물학이 추구하는 방향에는 기본적으로 두가지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생물학이란 모름지기 궁극적으로 생명의 다양성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다양성이란 흔히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종의 다양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 다양성과 각각의 종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서식지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그들의 삶 자체의 모든 다양한 모습들을 다 아우르는 개념이다. 각 생물종을 이루고 있는 유전자수 자체는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만큼 인간의 유전자들은 각자 여러 가지 일에 관여하는 다면발현성 유전자라는 걸 말해주는 결과일 뿐이다.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우리 대부분의 표현형들은 하나의 유전자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들에 의해 조절되는 다인자 형질의 성격을 띤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정해진 숫자의 유전자들이 한가지 형질발현에 이처럼 함께 힘을 합해야 된다는 사실은 자연스레 다면발현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인간의 유전자들은 그만큼 더 바삐 산다는 뜻일 뿐이다. 

 

인간 유전체의 규모가 예상보다 작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어온 유전자 자체의 중요성이 결정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인간 유전체를 연구하는 벤터 역시 ‘우리는 유전자 결정론을 지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숫자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유전자 간의 관계,  즉 유전자들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그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상호작용이 표현형의 운명을 상당부분 결정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환경이란 물리적 환경만이 아니다. 유전자도 나름의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유전자 간의 협동 역시 중요하지만, 그들간의 갈등 역시 그들의 환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