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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생물학이다(에른스트 마이어,

인간으로

마이오세에 들어 아프리카 기후가 점차 건조해지면서 많은 무리의 인류 조상은 넓게 펼쳐진 지역에 고립 되었는데 이러한 지역에서는 걸어다니는 것이 훨씬 유익하였다. 두발로 걸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도구 사용이 가능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또 도구 사용으로 인해 뇌가 급격하게 커졌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인간이 만든 도구가 화석기록으로 처음 등장하고 난 이후, 거의 20만년 동안 도구를 사용하는 기술이 거의 발전하지 않았다. 여러 종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살았던 200만년 이상, 이들은 여전히 유인원이었다. 200만 년에서 250만 년전 이들의 생활이 지상생활로 완전히 바뀌자,  어미의 팔과 손은 자유롭게 되어 아기를 돌볼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무력한 상태의 신생아 기간을 전보다 길어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결과적으로 어린 유아기에 지속적인 뇌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였다.  즉 두발로 걷기는 도구사용이 아닌 모성 행동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었다. 완전한 두발 걷기와 자식 돌보기와같은 초기 인류의 변화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전체가 아닌 집단주변의 격리된 일부 개체군에서 발전 되었을 것이다.

 

인간 조상들은 똑바로 서서 걷는 능력을 획득함에 따라 운동기관의 적절한 재형성이 요구되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대부분 지금의 침팬지처럼 초식생활을 했다.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하면서 완전히 지상으로 내려오자 이들은 초식 생활자에서 육식 생활자,  즉 사냥꾼으로 바뀌었다고 한때 생각되었다. 지금의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호모 에렉투스도 주식의 일부가끔 동물을 먹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커다란 동물 사냥은 그 이후 등장했을 것이다.  뇌가 커진 것은 호미니드 계열이 침팬지로부터 갈라져 나온 이후 지난 15만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아이 돌보기, 사냥과 더불어 뇌의 크기 증가에 기여한 주요 요인은 언어 발달과 이를 통해 가능해진 문화형성 그리고 다음 세대로의 문화 전달이었다. 말의 발달은 신경계는 물론 후두의 발성기관 그리고 이와 관련된 호흡기관의 구조에 대한 선택압으로 작용했다. 몇 가지 연구결과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발성기관이 올바른 말을 하기에 알맞은 구조가 아니었을 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호모 계열은 낮게 위치한 후두, 난원형으로 배열된 치열, 틈새 없는 치아, 목뿔뼈(설골)와 후두연골의 분리, 일반적인 혀의 움직임, 그리고 둥근 천정을 이루는 입천장 등의 해부학적 특징 때문에 말의 발달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약 30만년에서 20만년 전의 소규모 수렵채집인 집단내에서 서로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교환하기  위해 말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뇌 크기의 증가는 더욱 촉진되었다. 그러나 10만년 전 무렵 이러한 뇌 크기의 증가는 갑작스럽게 멈춰버리고, 네안데르탈인과 초기의 현세인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뇌는 거의 같은 크기를 유지해 왔다. 뇌크기의 증가가 멈춰버리게 된 하나의 원인은 아마도 무리의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정신은 영장류와 호미니드 조상 모두에 있어서 수없이 일어나는 작은 도약의 연쇄를 통해 궁극적으로 만들어진 산물로 생각된다.  결코 한순간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의사 소통과 문화의 발달을 일으킬 수 있었던 언어가 등장한 시기는 분명히 마음 형성이 크게 촉진된 시기였음이 확실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호모 하빌리스까지 그리고 호모 에렉투스 초기 호모 사피엔스를 거쳐 약20만 전에 현세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등장하기까지 호미니드 계열은 두발걷기, 말 그리고 뇌의 성당 등 지속적인 신체적 변화를 거쳐 왔다.  인류의 문화적 진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발전 중 하나는 호미니드 집단의 사회적 통합이었다.

 

영장류 가운데 오랑우탄과 같은 일부 종種은 단독생활을 하며,  침팬지나 개코원숭이와 같은 종은 비교적 커다란 규모의 사회를 이루며 생활한다.  호모 에렉투스 시대에 완전히 지상생활로 바뀌면서 무리의 크기는 점차 커지게 되었다. 이를 통해 분명한 이점은 침입자로부터 자신들을 더욱 잘 보호할 수 있을뿐 아니라, 같은 종種 내부에서 다른 경쟁집단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커졌으며, 또 새로운자원, 특히 음식을 찾아내는 일이 훨씬 수월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집단 자체가 선택의 대상이 되었으며, 여기에는 여성이 지속적으로 색스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발정기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게 된 것, 폐경기가 생겨난 것, 그리고 기대수명이 연장된 영장류에서는 물론 침팬지에서 조차 나타나지 않는 현세 인류의 특징들이 포함된다. 분명히 인접한 집단과 종족사이에서는 격렬한 분쟁이 일어났으며,  우월한 집단이 흔히 열등한 집단을 절멸시켰다.

 

최근 침팬지 집단에 대한 몇몇 관찰 보고에 따르면,  이들은 이웃 집단, 즉 경쟁 집단을 완전히 말살시켜 버리기도 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사회적 동물의 경우 집단 내에서 일어나는 마찰 가능성, 특히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같은 행동들은 협동의 장점을 크게 감소시킨다. 인간의 경우 규모의 집단에서 일어나는 부분적 마찰들은  일부일처제와 사회적 계층 형성을 지향하는 문화적경향을 통해 줄일 수 있었다결혼은 사회적 계약이므로, 가정 붕괴는 항상 커다란 문제와 실망을 안겨주게 된다.  대가족은 단지 문화적 결속과 문화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가족은 물론 심지어 핵가족의 붕괴는 도시 빈민가에서 볼 수 있는 문화적 붕괴의 근본 원인중 하나이다. 집단의 큐모가 커짐에 따라 노동의 세분화와 직업의 전문화는 점점 중요해졌고,  이는 더 나아가 사회계층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다른 생물종들은 단지 하나의 니치(틈새)를 차지하는 반면 인간은 수많은 니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인류 문화의 진화에서 중대한 시점은 수럽채집기에서 경작과 가축사육 시대로 전환되는 시기로 볼 있다. 이는 불과 1만년 전의 일이지만, 수백년에 걸친 인류진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그 무엇보다 인류와 지구상에서의 인류의 역할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것이 문명의 시작이었다. 약 1만년 전에 인간의 완전한 정착이 이루어진 이후 노동은 더욱 세분화 되었고 기술이 발전하였으며, 도시는 무역과 소모성 천연자원의 개발을 가능했고, 농업이 발달하면서 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다. 문명화 덕분에 인간은 환경에 크게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북극지방부터 남극지방까지 거의 모든 지역에 걸쳐 살고 있다. 많은 종류의 기계장치 덕분에 자역적 기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러한 적응은 천연자원의 고갈과 생물과 파멸을 가져오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