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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인문학 (전국국어교사모임, 황

생명을 살리는 언어의 회복은 가능한가? (1)

불과 이십년전만 해도 우리들 고향에는 푸른 하늘과 맑은 바람이 있었습니다. 신작로에선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곳이든 다른 생명체와 어울러 살았습니다. 지금은 시멘트 도로에 자동차들이 매연을 내뿜고, 페놀 섞인 개울에는 검은 기름이 떠다닙니다. 하늘은 흙먼지로 흙냄새는 플라스틱 썩는 냄새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편리함을 얻는 대신 생태계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의 삶의 기반에 되는 땅은 악취와 오염으로 가득합니다.  아파트 앞에 그린을 붙인다고 생태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 중심 생각에서 벗어나 타인과 공존하고,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적인 비방을 일삼는 글쓰기, 흑백 논리에 빠진 글쓰기, 말과 글은 조악하고 거칠기만 합니다인간의 마음이 파괴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겠지요. 고전문학에는 존재의 평등, 공존의 가치를 들려주는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고전 시대에는 온통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대부분이 자연 사물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강호를 노래하는 시조時調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자연을 가까이 하자고 합니다. 인간을 바라보니 멀수록 더욱 좋거니’ 와 ‘잔들고 혼자 앉아 먼 뫼를 바라보니, 말씀도 웃음도 아녀도 못내 좋아하노라’라고 하던 윤선도의 시조는 물아일체의 자연관을 잘 보여줍니다.  고전적 의미에서 자연의 의미를 크게 둘로 나눌수 있습니다. 인위적인 것과 상대적인 의미로 흔히 노장사상에서 이야기 하는 무위자연에서의 자연입니다. 이때 자연은 저절로 그렇게 됨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의 뜻은 산수자연으로서의 자연입니다.  고전시대 많은 고전문학은 자연을 드러내고 자연과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생태라는 개념은 단순히 산수 자연이나 자연사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생태 또는 생태학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 환경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의 상호관련성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생태시각의 본질은 인간을 포함한 존재들의 평등과 공존에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중심의 입장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환경이란 뜻과도 구별됩니다. 생태 글쓰기를 수행하기까지는 사물과 교감하여 얻은 깨달음을 표현하기까지 심리적 과정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생태 글쓰기 작가인 연암의 생각을 들여다보겠습니다. ‘ 마을의 어린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다가 읽기 싫어하기에 꾸짖었더니 그애가 말합디다. 하늘은 푸르고 푸른데 하늘 천자는 푸르지 않아요.  그래서 읽기 싫어요.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을 굶어 죽이겠소’  ( 박지원 ‘답창애答蒼厓’)

 

연암은 지식을 담고 있는 기호문자가 진실을 온전히 담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기존의 지식이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심어주어 진실을 가리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합니다벌레의 더듬이와 꽃술에 관심이 없는 자는 도무지 문장의 정신이 없는 것이고, 일상 사물의 형상을 음미하지 못하는 자는 한 글자도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박지원 ‘종북소선자서鍾北小選自序’)

 

문심은 문장가가 글을 쓸 때의 마음 작용으로서 글을 짓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연암은 우리가 혐오 하는 것들 하찮다고 무시하는 존재들을 자세히 보고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글쓰기의 기본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고 꼼꼼하게 관찰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풀, 꽃, 새, 벌레 같은 존재들도 모두 저마다 이치를 갖고 있으며,  하늘의 현묘玄妙함이 있다고 말합니다. 다음으로는 인간의 욕망이나 도덕을 위한 도구로 사물을 바라보지 말고 그 자체를 바라보라는 입니다. 글쓰기의 시작이 일상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에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연암은 생태적 사고에 바탕을 두어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이끌어냅니다. 이처럼 생태적 사고를 기반으로 사물을 개체로 바라보고, 이로부터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매우 특별한 글쓰기라 할 수 있습니다.

 

유학자들에게 자연은 질서와 조화의 공간이며,  그 질서와 조화를 통해 인간의 내면이 정화되고 자연과 합일되는 체험을 합니다. 사물을 관념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존재, 인간과 동등하게 존중 받아야 할 존재로 생각합니다. 사물에서 얻은 깨달음이 인간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물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물과 교감해서 얻은 발견을 글로 옮김으로써 존재의 소중함, 다양성의 가치, 상대적 태도의 중요성 등을 들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