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 (마쓰이 다다

언어의 씨를 뿌린다

교과서처럼 지식을 다룬 책은 이성에 호소하는 책이지만, 그림책을 포함한 문학책은 감성에 호소하는 책입니다.  요즘 가정이나 학교 교육을 보면 지성 개발에는 큰 관심을 두지만, 감성 발달은 등한시 합니다. 아이들에게 감동하는 마음을 길러주려면 어른이 먼저 감동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림책을 보고 어른이 먼저 감동해야 하다는 뜻입니다. 젊고 경험 없는 부모일수록 이러한 일들이 새로운 체험이 되고,  자녀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새롭게 하기 때문에 큰 감동을 느끼게 되지요. 그림책을 선물하는 등과 같은 일도 나쁘지는 않지만  물질을 주는 것은 단 한번이면 끝납니다.  그보다 마음을 주고 받으며 기쁨이 오래록 지속되는 일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아이들에게 그림책이나 이야기책에서 만난 언어는 삶의 뿌리가 깊게 내리게 합니다.  나는 내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은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무의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림책을 읽어주었기 때문에  교육적 효과를 바라거나 특별한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언어가 마음에 남게 되는 데에는 한가지 분명한 조건이 있는 듯합니다.  그 조건은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고,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말을 들었을 때 그 언어가 마음에 남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어와 함께 그것을 말해 준 사람의 존재도 마음에 남습니다눈앞에 어머니의 얼굴이 나를 향해 있고 좋아하는 그림책이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언어는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들었을 때에만 마음에 남습니다.  그림책은 무엇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거나,  책 읽기를 가르치는 책이 아닙니다.  그림책은 어린이가 읽는 책이 아닙니다.   그림책은 어른이 어린이에게 읽어주는 책입니다. 그림 책은 부모와 자녀를 단단히 묶어주는 고리가 됩니다. 

 

맏이가 첫돌이 지날 즈음부터 그림책 읽기를 시작하여 10년간 계속 했습니다. 그러한 생활속의 작은 습관이 아이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당시에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어요.  의식주와 책, 이것은 우리 가정을 지탱하고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기둥이었습니다.  그림책을 제공하고 읽어주는 쪽에서 쓴 그림책이나 체험론은 제법 많지만 그림책을 수용한 쪽에서 쓴 그림책 체험론은 거의 없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나는 유아의 수용력이 대단히 크다는 데 놀랐습니다. 세 살짜리 유아에게 작품의 의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었을리는 만무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인가가 받아들여지는거지요. 문장의 한구절, 삽화의 한 부분 혹은 그림책이 자아낸 놀라움, 슬픔, 기쁨, 두려움, 공감 같은 분위기였는지도 모르지요.  그러한 조그만 씨앗이 어린이의 마음속에 남아 긴세월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체험과 사색을 통해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 씨앗의 싹이 트고 여러 환경의 변화를 겪고 자극을 받고 영향을 흡수하여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여러가지 성장의 씨앗을 자녀의 못자리에 뿌리고 심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부모의 힘으로 자녀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겁 없는 소리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정도밖에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다 자란 지금와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성장의 씨앗을 뿌리고 아이의 성장을 돕는 일입니다.

 

'어린이 그림책의 세계 (마쓰이 다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세 무렵의 그림책  (0) 2017.12.12
0세 아기와 그림책  (0) 2017.12.11
그림책은 읽어주세요.  (0) 2017.12.07
감동하는 마음을 기른다.  (0) 2017.12.06
듣는 힘을 기른다  (0) 2017.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