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약자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일시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다. 무언의, 종종 아무런 자각도 없는 그리고 공격적인 많은 다수의 지지가 없다면, 그들은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제임스 본드의 은유가 여기서 도움이 된다. 그의 암호인 007에서 0두개는 그가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허가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그의 문명화된 세계는 그에게 부정한 일을 할당해 주었다. 때때로 그것은 훌륭하게 작용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때로 그것은 남용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에게 힘을 부여한다. 나는 약자를 괴롭히는 일이 일어나는 풍토를 만든 책임이 집단에 있다고 생각한다.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용해 주는 것은 집단이다. 때때로 집단은 반사회적인 성향을 가진 한 아이를 발견해서 그 아이로 하여금 약자를 괴롭히는 싸움대장처럼 행동하도록 자극한다.
많은 공격 행위가 아이들 사이에서 진행된다. 몸집이 작은 아이들은 더 큰 아이들에 의해 위협을 당하고 거친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 힘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면, 자신의 강점을 억지로 각인시키려 들것이다. 몸집이 큰 아이는 작은 아이에게서 두려움을 감지하며, 그것을 보고 만족감을 느낀다. 게다가 다른 아이들 역시 그의 힘을 감지하고 겁먹은 아이가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흥분을 느낀다. 거부당하는 아이가 강자에 의해 괴롭힘을 당할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것이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행위라고 생각하지도않는다. 그것은 그저 누군가를 좀 곯려 주는 것 뿐이며, 그 아이에겐 그럴 만 하다는 것이다. 조롱에서부터 신체적인 상처를 입히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행동이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로 불려지며 불량배들의 소행으로 여겨진다. 다른 아이를 괴롭히아이들은 육체적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더 크고 말도 잘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정도가 심한 공격에도 느긋함을 보이는 경향이 있으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도 다른 아이들만큼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괴롭힘과 관계된 모든 상황을 자세하고 면밀히 분석하려면 아이들의 삶을 낱낱이 이해하고 집단의 역학이 고려되어야만 할 것이다.
만일 한 아이가 끊임없이 다른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는다면, 그 아이는 기회가 주어지면 자기보다 더 작은 아이를 괴롭힐 것이다. 사회적 사다리에서 저 아래에 있는 서너명의 아이들이 이번에는 완전히 맨 밑에 있는 아이를 괴롭히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지위 높은 아이에게 있어서 낮은 지위의 두 아이가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검투사 스타일의 오락이었다. 불안한 위치에 있으면서 약자를 괴롭히는 아이는 자신에게 사교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괴롭힘으로써 인기를 얻어려는 서투른 노력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다른 갈래의 연구는 약자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상당히 사교기술이 좋으며, 독특한 사회적 재능을 갖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감정이입 재능이다. 그러나 이들은 상대를 배려하고 측은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파괴적인 일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인간은 누구나 집단에 의해 인정받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지니며, 신성한 사회적 관습을 갈망한다. 이들 두가지 욕구를 집단에 의해 인정받는 의식으로 결합시킨 것은 어느 정도 경탄할 만한 일이다. 우리는 이들 의식에 대한 뿌리 깊은 내면의 욕구를 지닌다. 졸업식은 우리가 학업을 마치고 이제 교육받은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의식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킴으로써 변화가 일어나는 불안한 시기에 우리를 위로해 준다. 의식은 또한 누가 높은 지위와 서열에 올라있으며, 누가 중요한 사람인지 누가 권력을 쥐고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입회식은 누가 특권계급과 자리를 같이할 권리를 얻었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들은 선배들과 어른들의 비밀과 특권속으로 자기도 발을 들여놓을 수 있기를 갈망한다. 성년식은 아동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감을 의미하기에 젊은이들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아이들은 스스로 시험과 경쟁을 만들어내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자신이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고, 또래들이나 더 어린아이들에게 자신의 훈장을 수여할 수 있는 권력을, 자리를 추구한다.
집단에서 신참 곯리기의 목표는 충성과 헌신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불평하거나, 도중에 포기하거나, 지나친 괴롭힘을 학교 당국에 보고하는 것은 그가 집단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소녀에서 여성으로 변화했다고 느꼈던 때가 언제인지 그 순간을 기억해 보라고 했다. 여성의 경우 결혼식에서 문화적 의식이든, 혹은 출산의 경험같은 생물학적인 의식이든, 그 순간은 대부분 어떤 의식과 관련된 것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그런 의식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신참 곯리기의 관례는 나쁜 것일까, 아니면 좋은 것일까? 부모들은 그것이 지니는 가치를 알면서도 그들이 겪었던 가장 끔찍한 것을 자식에게 겪게 하고 싶지는 않는다. 이런 반응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의식에 대한 욕구, 그리고 타인과 연결되고 그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뿌리 깊은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학교에 대한 충성심, 두뇌의 미성숙, 불충분한 정신발달, 전통에 대한 그릇된 집착과 그리고 집단 결속력. 이 모든 것들이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자란 착한 아이들이 신참 곯리기의 잔인한 전통을 왜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까지 잔인하며 또 그런 행위를 할 권리를 지키고 싶어하는지 거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아이들은 인생의 모든 것을 다시 말해 경쟁, 매력, 스포츠에 대한 열정 그리고 학문적인 공적 등을 대상으로 실험한다. 모든 것을 차례로 실험대상에 올리고 있는 그들이 잔인성과 힘에 대해서는 왜 궁금해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자신의 힘에 대해 전율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보편적인 경험이다. 책임을 분산시키는 집단의 속성, 즉 '모두들 그 행위에 동참했다'라는 생각은 죄의식이나 도덕적 과실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다.
성인이 된 인간들은 힘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독재자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거의 무슨 짓이든 다할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위가 그들을 곤경에 몰아넣고 죄의식을 불러일으킨다할지라도, 그것은 그들이 다른 방식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위대함이라는 감정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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