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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 존 홀

오직 믿고 맡길 뿐

학교 그리고 아이의 배움에 관심을 갖는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은 독자적으로 배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문제는 아이들의 배움이 이루어지는 학교에서 정작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경험하고, 배울 시간이나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아이들은 흥미와 호기심으로 배운다권력을 잡고 있는 어른들을 기쁘게 하거나, 달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배움에서 주도권을 가져야만 한다.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어떻게 배우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아이는 혼자서 알아낼 수 있다.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이는 전구나 비행기, 내연기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아이는 그것들을 발명할 필요가 없다. 법이나 정부, 미술, 음악, 아니 문화가 이미 발명되어 저기 저 밖에, 아이 앞에 펼쳐져 있다.  그러므로 할 일은 다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문화를 탐구하고, 의미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게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발견의  전부이고, 또한 아이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발견이다. 그럴 자유가 주어진다면 말이다.

 

이 세상의 어떤 지식도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으로 증명될 수는 없다. 쓸모있고 편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필수적이진 않다.  또한 지식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지금 쓸모있고 가치있다 해서 영원히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언젠가는 시대에 뒤쳐지고 버려지며 심지어는 완전히 틀린 것으로 판명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배움의 과정에서 '학습자 자신이 최고의 재판관이자 주도자가 되어야 한다' 믿는 이유가 있다.  나는 아이들의 머리에 지식을 우겨넣는 일에 반대한다.  나는 우리가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 분투하며, 배워야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가장 배우길 원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알고 싶어할 때는 항상 이유가 있다.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이해, 세상에 대한 우리의 내적 모델에 구멍, 틈, 빈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우고 싶어한다. 그건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어떻게? 언제? 왜?  틈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불안하고 늘 긴장상태에 놓인다. 그 뚫인 구멍과 틈이 메워지면, 우리는 기쁨과 만족을 느끼고 안도한다. 새로운 지식은 마치 퍼즐의 빠진 조각 처럼 구멍난 곳에 딱 맞아떨어진다. 세상을 보다 이치에 맞고 흥미로운 장소로 만든 것을, 우리의 내적 모델을 보다 완전하고 정확하게 만든 것을, 우리가 잊을 리 없다. 

 

우리는 아이들의 내적모델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어디가 왜곡되고 어느 부분이 불완전한지 없다. 아이가 어떻게, 얼마나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 뜻으로 전달되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  더군다나 말자체는 대단히 허술하고 애매모호한 소통수단일뿐 아니라,  굉장히 느리기까지 하다. 찬구에 대해 생각해 보라. 서로를 오랫동안 봐왔고,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비슷한 언어를 구사하는 친구들을 말이다. 그런 사이에서조차도 어떤 주제에 대해 상대방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려면 저녁 시간을 전부를 대화에 걸어야 할 때가 있다. 밤새 나눈 이야기가 아무리 즐겁고 흥미로웠다해도 결국 서로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대화를 끝내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나' 조차도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의 아주 적은 부분만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내가 교육에 대해 하려는 이야기는 어떤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그 믿음은 뒷받침해줄 증거는 많지만 증명은 할 수 없음이다. 앞으로도 증명이 되지는 않을테니 그것을 신념이라고 부르기로하자. 그 신념은 이렇다. 사람은 본래 배우는 동물이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생각하고 배운다. 그러니 아이들을 감언이설로 구어삶거나 꼬드기거나 을러대는 방식으로 뭔가를 배우라고 동기부여를 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위해 끊임없이 아이들의 머리에 구멍을 뚫을 필요도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학교와 교실에 가능한 한 많은 세상을 들여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고 또 요구하는만큼 안내하고,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말을 하고 싶어하면 존중하는 마음으로 귀 기울이라. 그다음엔 자진해서 비켜주어라. 나머지는 아이들이 알아서 할 것이니 믿어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