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의 용기는 변동이 심하다. 두 살 정도 된 아기가 엄마와 산책을 하거나, 혹은 놀이터나 공원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면 이런 변동을 아주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얼마전 보스턴 시민공원에 갔을 때도 이런 장면을 보았다. 엄마들이 벤치에서 수다를 떠는 동안 아이들은 주변을 돌아다녔다. 처음 얼마간 아이들은 엄마를 무시한 채 대담하고 자유롭게 탐험에 나섰다. 그러다가 저장된용기와 자신감을 모두 써버리면, 다시 엄마에게 돌아와 마치 배터리를 충전하듯 옆에 착달라 붙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탐험을 할 준비가 되면 아이는 엄마 곁을 떠났고, 충전이 필요해 지면 또다시 돌아오길 반복했다. 이런 식으로 아기 또한 탐험과 후퇴, 충전의 시간을 반복해서 갖는다.
어린 자녀에게 헤엄을 가르치려는 부모들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아이의 용기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아이들의 그런 특성에 무관심한 것일까? 그들은 아이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간곡한 권유나 격려 아니면 분노나 위협으로 아이의 감정을 쉽게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쨋거나 아이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아이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아이가 무서워 하는 일을 계속해서 강요하면, 그 아이는 더욱 소심해지고 자신의 지성과 에너지를 미지의 것을 탐사하는데 쓰는 대신, 어른이 가하는 압력을 피하는 방법을 찾는데 쓰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기의 용기가 허용하는 한계 너머로 아이를 밀어붙이지 않으려고 조심해야 한다. 그러면 분명히 아이는 더 용감해 진다.
우리의 경험을 통해 내가 확신하게 된 것은 어른들이 아이의 각오와 의지 이상으로 빠르게 그리고 멀리 밀어붙이려 하지 않을 때 오직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고, 그 세계를 통제할 힘을 획득하고자 하는 아이의 자연스런 욕구를 이용할 때만이 학생과 교사 둘다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맨 먼저 새로 만난 흥미로운 세계를 향해 대담한 도약을 강행한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편안하고 익숙하고 안전한 장소로 후퇴한다. 우리는 이 전진과 후퇴, 탐색과 강화의 리듬을 예측할 수 없으며, 조절은 더더욱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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