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는 것은 많은 아이들이 읽기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마술 알약이 아니다. 만약 책읽기가 부모에게나 아이에게나 재미없는 소일거리에 불과하다면, 좋은 결과를 주기보다 해악을 끼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누군가 책읽어 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부모가 그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 역시 흥미를 잃게 된다. 아이들은 어른의 감정을 아주 예민하게 감지한다. 아이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서 책을 읽어준다면 아이는 훨씬 더 듣기에 집중하고 즐기게 될 것이다. 또 한가지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점은 아이에게 책을 사주면 십중팔구 그 책을 읽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어른들의 얘기를 듣는 것을 즐긴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어주면 좋은 유일한 이유는 당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누는 기쁨에 있다. 그러므로 그런 마음으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수 없는 사람은 아예 책을 읽어주지 말아야 한다.
어느 날 나는 단어가 쉽고 그림이 많다고 그 책이 아이에게 꼭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그림이 하나도 없는 책을 들고, 세 살짜리들이 모여 있는 교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은 다음 조용하게 소리내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잠시후 몇몇 아이들이 책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얼마 안있어 한 명씩 차례로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보러 왔다. 책을 들여다 본 아이들은 그 안에 그림이 전혀 없는 걸 발견하고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곧바로 등을 돌리는 아이는 없었다. 오히려 상당수의 아이들은 좀 더 세심하고 주의깊게 내가 읽는 걸 들여다보더니 마침내 책에 있는 단어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건 뭐죠?'라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가르쳐 주었지만 관심을 갖지는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책의 까만 표시들이 뭔가를 말해주고 있다는 개념을 파악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생각이나 말처럼 사라지기 쉬운 것을 글로 단단하게 굳혀서 원하는 만큼 오래 보존할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고도 흥미가 당기지 않는가. 아이가 읽기 기술을 배우고, 또 확실히 배웠는지 검사를 받느라 하루에 몇 시간을 보내거나 하지 않는다. 전자공학같은 전문분야에 대한 책에 필요한 기본 용어들을 읽게 되면, 아이는 그 어떤 단어를 만나도 어려움 없이 읽을만큼 글자와 소리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른들은 마치 아이들이 시간표에 맞추어 달려야만 하는 기차라도 되는 듯이 군다. 철도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차가 정해진 시간에 종차역에 도착하려면, 노선 중간에 있는 모든 역에도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차가 어떤 정거장에 10분만 늦게 도착해도 그들은 걱정하기 시작한다. 이와 흡사하게 어른들은 아이들이 대학에 갈때까지 알아야할 지식의 종류와 양을 각 나이와 학년별로 정해놓고 그것대로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아이가 그 시간표를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기미라도 보이면, 그들은 곧바로 이 아이는 아주 늦게 종착지에 도착할거라고 예단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기차가 아니다. 그들의 배움은 매우 불규칙하다. 그리고 아이가 배우고 있는 내용을 재미있어 하면 할수록 그 불규칙성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은 우리가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순서에 따라 배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흔히 어려운 것을 쉬운 것보다 나중에 배우는 게 논리에 맞다고 생각하지만, 의미를 찾는 탐구자인 아이들은 어려운 것에 더 먼저 접근하기도 한다. 그쪽에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을 경우에 말이다. 아이들이 세계로부터 훨씬 덜 분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순수하게 육체적인 기술, 예를 들어 스포츠나 체조, 발레, 악기, 연주와 같은 것을 배울때에는 대체로 쉬운 것을 먼저하고 어려운 건 나중에 익히는게 맞다. 몸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일의 쉽고 어려움을 머릿속에 인식시키는 건, 그 일이 포함하고 있는 정보의 양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그 일이 얼마나 재미있느냐와 상관이 있다. 다시말해 그 일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자신의 현실과 관계가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얘기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아무리 잘 가르친다고 해도 아이는 결국 자기나름의 이유에서 자기 만의 방식으로 배울 때 훨씬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모든 아이들이 다 흥미로운 일을 발견하고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겐 억지로 배우게 하거나, 무엇을 배우라고 가르쳐주거나, 어떻게 배우는지를 보여줄 필요가 없다. 세상과 접촉할 기회, 그리고 그 세상속에서 우리의 삶과 일에 접촉할 기회를 충분히 준다면, 아이들은 무엇이 진실로 우리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한지를 충분히 명확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은 길을 스스로 만들어서 그 세상속으로 나아갈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읽는 법을 익히기까지 고생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우리의 불안감과 두려움, 그리고 이미 충분히 단순한 것을 더욱 단순하게 만들려고, 우리가 벌이는 그 우스광스러운 짓들이 문제의 대부분을 일으킨다고 말이다. 아이들이 1학년에 들어갈 즈음 보통 알고 있는 단어의 수는 5000개 이상이다. 그리고 이 단어들중 엄청나게 많은 수가 하나 이상의 정의를 가지고 있다. 전세계 아이들이 이 엄청난 정보의 대부분을 여섯살 정도에 획득하며, 그것도 정식수업이라고 부를만한 어떤 것도 받지 않고 혼자서 터득하다니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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