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를 배울 수 있으며, 실제로 그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말하게 된다. 이른바 표준언어로 말하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네 말은 어딘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그건 오로지 해만 끼칠 뿐이다. 아이 말을 듣는게 너무 즐거워서 그와 같은 실수에 대해서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는 이라면, 누구나 사람들이 자기 없이는 아무것도 해나가지 못할 거라고 믿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은 사람들이 제 발로 일어설 수 있다는 증거를 보고 듣는 일을 제일 싫어한다. 아이들의 감각은 예민하며 모든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른들처럼 하게 되길 원한다. 따라서 우리가 능숙하게 말을 잘하면, 아이들은 우리가 말하는 걸 듣고 마침내 우리처럼 말하게 될 것이다.
아이에게 말을 할 때마다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말을 계산적으로 꾸며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많은 어른들이 신봉하는 이 이론은 아이가 말하기나 읽기나 혹은 어떤 일에서든 실수를 보이면 그때마다 당장 교정해서 더 이상 고치기 어려운 나쁜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아이들이 자신이 배우는 많은 것들 즉 걷기, 말하기, 읽기, 쓰기 같은 것들을 스스로 해보고 그 과정에서 실수를 함으로써, 나아가 그 실수를 교정함으로써 배운다. 이는 수학자들이 '연속근사법' 이라고 부르는 방법과 흡사하다. 다시 말하면 아이들은 일단 뭔가를 하고 난뒤, 그 결과를 자기가 달성하길 원하는 목표와 비교해서 차이점을 알아내고, 마침내 그 차이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모든 아이들이 이 작업을 할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다 이작업을 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
아이는 남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생각하는데 몰두해서 자기가 실제로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에는 신경을 쓸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러다 어떤 시점에 이르러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을 때 자기가 실제로 내고 있는 소리를 좀 더 주의깊게 듣기 시작하고, 그것이 어른들이 내는 소리와 다를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습관이란 단어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하는 일들을 설명할 때 사용해야 옳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실행하는 일들을 설명할 때도 역시 이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물론 옳지 않다.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치료사인 펠덴크라이스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뇌라는 생명체는 영리하다. 뇌는 일을 올바르게 하고 싶어한다. 믿을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올바른 방법을 보여주기만 하면 곧바로 바꾼다’
악기연주처럼 어떤 복잡한 신체적 기술을 익히는 일에서는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신경과 근육의 정해진 일을 하도록 의식적으로 길들여야 한다. 좋은 습관은 그것을 획득한 후에 계속해서 다시 익혀 신경근육계에 기억시켜야 하기 때문이다.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수백시간이 필요한 반면, 나쁜 습관은 단 몇초면 만들어진다는 생각은 정말 황당하지 않은가? 여기서 교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아이들의 실수를 고치기 위해 항상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실수를 알아차리고 고칠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럴 기회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아이들은 스스로 고치는 일에 더 능숙해진다. 그러면 우리에게 의지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이것이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덜 의지할수록 아이들은 스스로를 더 잘 가르칠 수 있다.
아이가 말을 시작한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굉장히 용기있는 도약을 감행하는 것과 같다. 말을 익히기 시작한 아이에게는 내가 이탈리아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 들어주는 세심한 청중이 필요하다. 성장하는 시기에 어른들이 자신의 말에 무관심 하다고 느낀 아이는 심하게 상처받는다. 아이는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똑같이 들리게 하기 위해 '단어 패턴과 문장'을 만든다. 거기엔 아무 뜻도 담겨있지 않을 때가 많다. 아이는 자기가 쓰는 단어릐 의미를 알아내는데 도움이 될만한 어떤 일을 발생시키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아무거나 알아내기 위해 되는대로 정보를 수집한 것이 아니라, 뭔지에 대한 자신의 직감을 의도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말을 한다. 아이들은 희미한 정보를 수집, 저장하는데 뛰어나다. 아이들은 마침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린다.
사람들에게 잔소리는 화를 불러일으킨다. 그건 모욕이기 때문이다. 부탁하지 않았는데 누군가를 가르치려 드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 넌 네가 이걸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만큼 똑똑하지 못해’ 아이들의 자존심과 긍지가 강하면서도 깨지기 쉬운 것이다. 아이들의 자존심을 짓밟지 않으려면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어른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을 만큼 배려심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까지 이런 예의를 갖추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이들은 지각력이 뛰어나고 예민하며 그런 만큼 아주 쉽게 상처받고 창피를 느끼고 기가 꺽이기 때문이다.
학교가 파하면 아이들은 집으로 향한다. 집에 가도 말할 기회는 별로 없다. 숙제나 텔레비전에 시간을 빼앗기기 십상이고, 더군다나 집에 있는 사람들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는 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단 말하기에 흥미를 잃고 능력이 저하된 아이들은 표준교육과정의 모든 과목에서 그 영향을 받게 된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말이 유창하지 못하면, 그것은 손발이 묶여 있는 것과 다름없다. 교사가 주로 말을 하고, 이따금씩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다. 그것도 단지 아이들이 계속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지 얼마나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때로는 어떤 용감한 교사가 토론이란 것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에는 교사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끌어내기 위해 미리 정해놓은 일련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많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짝을 이루어 그룹단위로 자유롭게 공부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이들 스스로 선택해 독자적으로 공부할 수 없는 수업에서는 아이들끼리 관심사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시간을 배려하는 것도 좋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다른 아이와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빈틈없이 통제받는데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자유 시간을 주면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안좋은 방식으로 남용하게 된다고 말하는 교사들이 더러 있다. 그런 문제가 없는건 아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 심각하진 않다. 이에 대처하려면 처음에 자유시간을 줄 때 약간의 제한을 가하는 방법이 있다. 시간을 15분이나 30분 정도로 제한하고, 말은 반드시 조용하게 해야 한다는 규칙을 정하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학교의 고정된 형식을 깨부수고 교실을 자율적인 공부와 사고, 대화가 점점 더 많이 오가는 곳으로 만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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