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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 존 홀

아이들의 놀이와 실험(3)

아이들의 미래 모습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조짐만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어떤 아이는 쓰기나 읽기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필요할 때는 읽고 쓸줄 알았지만, 글은 아이가 세상을 탐사하기 위해 선택한 주요 통로는 아니었다.반면 어떤 아이의 관심은 글에 집중돼 있다.  읽고 쓰는 일 모두에 흥미를 느낀 아이는 열 살쯤에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가 기계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아이에게 진짜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의 중요성을 알았다. 솔직히 우리 사회에서 행해지는 일이란 것 중 아주 많은 것들은 전혀 일이 아니다.  분명 아이들은 그것을 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장인들의 직업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그 일에 대해 직접 물어불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아이들은 어떤 특정한 표현이 어떤 특수한 행동에 따라 나온다는 것, 그리고 특정한 상황에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을 배운다. 언어를 이렇게 사용한다는 것은 모방일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하지만 맹목적 이고, 무의미한 모방은 아니다. 아이들은 말과 상황의 관련성을 찾아내고 그런 후에 사용한다. 핸들을 한쪽 방향으로 돌려서 무엇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또 다른 방향으로 돌려서 내려가는걸 보는 일은 아이에게는 흥미롭고도 중요한 실험이다. 아이는 크랭크의 작동원리뿐 아니라, 많은 행위가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결과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아가 세상은 여러모로 이해할 수 있는 믿을만한 곳 이라는 신념도 갖게 된다.

 

나는 자신이 부탁하지 않은 것을 누군가 가르치려 하는 일에 대한 아이의 저항은 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넌 이걸 배울 수 있을 만큼은 똑똑하지 못해' 당연히 이런 메시지는 아이들에게 성처를 주고 화나게 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 나 혼자 하게 해 줘’ 이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아이들 스스로 부탁할 것이다. 적어도 아이들이 부탁할 때 우리가 도움을 준다면 말이다. 반면 아이들을 가르치고 도우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의심과 불신의 메시지를 반복해서 보낸다면, 우리는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의 자신감을 전부 파괴하고, 나아가 너희들은 뭔가를 배우기 에는너무 게으르고 호기심이 부족하고, 멍청하다는 확신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것이다.

 

요즘 들어 나는 만약 아이들이 진짜 일을 하는 어른들을 보고 또 곁에서 그들을 도울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여러모로 아이들에게 유익할거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자택 교육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이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일을 시키지도 않았고 상을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진짜 일을 하는 모습을 보았고 거기에 참여하고 싶어했다. 아이는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을 터득하면 학교를 좋아하게 된다. 그럴 때 아이는 교과목에 없는 여러 가지 일에 깊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늘 학교에서 가르치려는 것이나 가르쳐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려 한다. 아이들이 어려운 악기에 도전해 소리를 내게 하려고 확신에 차서 열심히 매달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아이들은 맹렬한 기세로 한 번에 세가지 일을 해치운다. 기구를 작동시키고, 소리를 만들어내는 일을 즐기면서, 동시에 과학적인 탐구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현 하나에 활을 대고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해 한참 동안 그 일을 계속한다. 그저 첼로 감촉을 느끼고,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는 단계다. 그 다음엔 활의 움직임에 변화를 주기 시작해서 다른 리듬을 만들어 낸다. 잠시 후 아이 들은 활이 하나 이상의 현을 건드리게 하면서 움직이거나 다른 현으로 옮겨본다.

 

처음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아내려는 실험정신으로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아이들은 적어도 처음 몇 번은 그냥 아무생각 없이 활을 옮겨본다, 그렇게 한가지 방법으로 활을 켜가면서 소리를 만들어내다가 차츰 다른방법을 써서 다른 소리를 창조한다. 활을 켜는 방법과 소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시간이 좀 지난 후에야 확연하게 인식되는 것 같다. 일단 그 단계가 되면 연주 방법에 확실한 변화가 생긴다. 아이들은 좀 더 계획적으로 주의 깊고, 신중하게 현에서 현으로 옮겨간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아이들은 무작위로 활을 켜보는 활동을 충분히 해보아야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할 있다. 일단 상당양의 거친 감각데이타를 축전 이후에야 거기에서 쓸 만한 것을 가려내고 이치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추측컨대 아이들은 그저 내가 첼로연주를 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한 다해보려고 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겐 공상과 현실사이의 경계가 아주 불분명하기 때문에 두 발을 서로 다른 쪽에 두고도 완전히 편안하게 서 있을 수 있다게다가 아이들은 처음에는 소리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 그들은 그저 첼로를 작동시킨다는 사실 자체에 완전히 열중하고, 흥분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잠시후 아이들은 자기들이 내는 소리가 나와 완전히 똑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그걸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짜 알 길 원하는 건 바로 이 순간이다. 다시 말하면 아이들은 전체적인 활동에 대한 윤곽을 먼저 잡은 뒤에야 부분적이고 기술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아이는 잡음으로부터 해딥을 얻는데 익숙하다. 사실 아이는 모든 것이 다 잡음인 이상한 세계에서 자라나지 않았던가. 그 세계에서 아이는 경험의 아주 일부분만을 이해하고 알아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에 접근하는 아이의 방법은 가능한 최대한 데이터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말이다. 그렇게 하면서 아이는 규칙과 패턴들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에 다시 의문을 던짐으로써 계획적인 실험으로 나아간다.  이 점이 중요하다.  아이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전까지는 무엇을 물어야 할지, 물어봐야 될 게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이는 불필요하고 쓸모없는 정보를 잘라내고, 문제를 단순화하고, 가장 큰 정보를 제공해줄 질문을 일거에 찾아내는 데는 어른만큼 유능하지 못하다.  사고하는 법을 훈련받은 어른이라면, 첼로에 똑같은 초보자라 해도 아이들이 오래 걸려 해낸 일을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에 의해 생각이 더럽혀지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굉장히 능력을 발휘하는 때가 있다. 얼핏 무의미해 보이는 데이터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물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가 그러하다.  이런 종류의 데이터를 이해하는 데는 아이가 훨씬 뛰어나다.  아이들은 혼란스러운 상태를 소화해낼 수 있다. 그 속에서 규칙적인 패턴을 훨씬 잘 뽑아내며 온갖 잡음 속에서도 유효한 신호음을 더 잘 들을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지나치게 적은 데이터에 기초해 견고하고 변치않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어른보다 적다는 사실이다. 아이는 어른처럼 그걸 뒷받침하지 않는 새로운 데이터를 검토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이야말로 지적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데도 우리는 아이들이 우리처럼 사고하도록 만들기 위해 안달을 내며 교육시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