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펜 뚜껑을 벗기고 끼우는 것도 아이에게 놀이다. 아이는 타자기를 손가락으로 누르는 것을 보고 따라하며 일어난 결과에 신나했다.얼마되지 않아 이건 일종의 놀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필요 이상의 도움을 받으면 무척 싫어한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지성적이고, 영리하고 참을성 있고, 재주가 많다. 그리하여 전문가들이 흔히 아이들은 할 수 없다고 확신에 가득차서 말하는 일들을 완벽하게 해낸다. 내가 아는 많은 아이들은 끝없는 이야기나 끝없는 노래를 하길 좋아한다.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한구절 씩 덧붙여, 노래가 끝없이 이어지게 하는 놀이를 어른과 함께 하기를 좋아한다. 가사와 멜로디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건, 상당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이런 노래는 학교에서 부르는 노래와 완전히 다르다. 학교 노래 목적 또한 새로운 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닌 올바르게 노래하는 것이다. 끝없는 노래부르기 노래처럼 즉흥적 으로 가사와 리듬, 곡조를 지을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들의 음악적, 언어적 성장이
아주 빨라 진다고 한다.
즉흥연주란 근육과 손과 손가락에 가해지는 의식적인 통제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단계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악기를 힘들이지 않고,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다룰수 있다. 꼬마 아이들이 부르는 그 매혹적이고, 끝없는 노래는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안돼, 만지지마, 다친다, 그건 내꺼야, 제자리에 갖다놔!' 이럴때마다 아이들은 주변세계를 샅샅이 탐사해서 어떤 이치를 끌어낼 자신의 권리와 필요를 침해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자주 그런 대우를 받으면 아이의 호기심이 사라지고 말거라는 것 또한 뻔하다. 아이는 아마도 이 세상을 탐구해 볼만한 흥미로운 일들로 가득차 있다고 느끼는 대신, 숨겨진 위험과 말썽에 휘말려들게 만드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큰사람들이 쓰고 있는 바로 그 물건들이야말로 아이가 가장 큰 흥미를 느끼는 사물이라는 것이다. 누가 설거지나 요리를 하고 있으면, 아이는 자기가 돕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아이에겐 세상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마음대로 움직이고, 큰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이상의 욕망은 없다. 우리는 그런 거대한 동력원을 이용하는 대신 오히려 억누르고 있다. 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물을 실제 대루는 기술과 방법 등을 보여주면서 아이로 하여금 그것을 이해하고, 사용하고, 획득하게 만들지 않는 것일까? 아이들이 물건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건 아이들의 호기심과 자신감을 꺾어버린다. 특히 네 것이 아닌 것은 만지지 말라는 식의 지시는 아이로 하여금 올바르지 않은 소유욕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사적 소유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사유재산을 존중한다는 것이 네 물건 아닌 것은 만지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본래 목적에 맞게 물건을 사용하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놀이의 이면에는 항상 즐거움과 장난기, 활력이 숨어있다. 좋은 놀이라면 모두 다 그렇듯이, 물론 그중에는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내는 놀이도 있다. 우리는 그런 놀이를 '교육'이라고 부른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배우게 만든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쁜 일이 일어날 거라고 위협한다. 학교와 교육을 동일시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런 놀이를 별로 좋아하지않으며, 그만둘 수 있는 그 즉시 그만두어버린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놀이는 아이에게 어떤 일이 또 다른 일을 불러일으킨다는 인과관계에 대한 강한 느낌을 갖도록 해준다. 또한 자신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느낌, 주변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도와준다. 아이는 언제나 일단 뭔가를 재빨리 해봄으로써 모방을 시작한다. 아이에겐 뭔가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아이는 일단 뭔가를 시작한 후 그 다음에 고쳐나간다. 저신이 어른과 똑같이 하고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계속해서 살피고 비교한다. 몸으로 따라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먼저 흉내를 내보면서 맞는지 틀린지 확인을 해보는 식으로 말이다.
열살짜리들은 그저 귀찮은 일을 빨리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어할 뿐이다. 내가 볼때 아주 어린아이들은 일종의 장인정신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다만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재료가 조잡하고, 솜씨가 서툴기 때문에 어른들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버리기 쉽다. 아이들은 온 능력을 다해 잘 만들려고 한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아이는 불확실한 세계속에서도 물속의 물고기만큼이나 자연스럽고 편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언제부터, 그리고 왜 확실성을 갈망하게 되는 것일까? 어린 아이들은 감정에 무척 민감하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동화될 뿐 아니라, 실제보다 더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 어린 아이 들은 감정이입을 못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도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언제나 그런 것이 아닌게 분명하다.
자폐아란 바깥세상과 아무런 접촉도 하지 않고, 하고 싶어하지도 않은 채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사는 아이를 말한다. '자폐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무성한 가운데, 사람들은 대체로 자폐증이 심각한 아이에겐 많은 일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만약 우리중 누구가 세상은 너무나 예측 불가능하고, 위헙적인데 반해 그 자신은 지극히 무력한 것 같아서 감히 위험한 세상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작지만 안전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치자. 그런데 어떤 계기를 통해 자신의 힘으로 세상에 뭔가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느낀다면, 바깥세상이 좀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세상은 좀더 예측가능하고 덜 위협적으로 보이는 반면, 자신은 좀 더 힘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을까? 모든 아이들은 주변세계에 대해 보다 많은 주도력과 통제력을 갖길 원하며, 그러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런 힘이 없음을 알게될 때마다 어느정도는 수치심과 위협을 느끼고, 겁을 집어 먹는다. 어쩌면 자폐아들은 통제력을 훨씬 더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더 겁을 집어먹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통제력을 획득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꾸준히 노력하는 대부분의 보통 아이들과는 달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큰 세계에서 물러나, 자기만의 사적인 내면 세계로 들어가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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