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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 존 홀

아이들의 놀이와 실험(2)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왜 두려운지를 설명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욕구가 어디서 나오는지 말하기 어렵다. 특히 아주 어린 꼬마들의 경우에는 더 그렇다. 많은 용기가 학습된다고 하지만 본능적인 용기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용감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바람이라든가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그런 욕구를 말이다.  과중한 부담을 주지만 않는다면, 이 본능적인 용기는 절로 자라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이 용기를 북돋워주어야 한다. 이상한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은 아이에게서 독립심의 첫 번째 신호를 발견하면 놀라고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독립을 선언할 때조차 사실은 자신이 완전히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체스게임 하는 것을 보거나 ,혹은 듣는 것만으로도 즉시 끼고 싶어 한다.다른 사람들이 하는 뭔가에서 제외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왜 좀 더 큰 아이들은 성공이 지연되는 데서 오는 좌절감을 훨씬 더 감당하지 못하는 것일까?  추측컨대 그 이유는 아이들이 아주 경쟁적이고 체면을 의식하는 상황속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모두가 교사의 인정, 혹은 다른 아이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신의 노력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도 관심밖 이다.  하지만 유아원의 많은 네살짜리들에게 퍼즐 맞추기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한 목적 달성의 도구일 뿐이다. 

 

어떤 순간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배울수 있는가는, 해야 할 일과 그 일을 해낼 자신의 능력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에 달려있다. 스스로 강하고 능력 있다고 느낄 때는 어려운 임무에도 쉽게 뛰어들 수 있다.  학습자가 어떤 기분에 젖어있는지를 감지하는 능력도 가르치는 이가 터득해야할 중요한 기술중 하나다. 사람들의 기분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 나는 어떤 여덟 살짜리는 첼로 레슨을 하는 30분동안 기분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변화를 경험했다. 기분이 저조할 때에는 남이 강요하거나 재촉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봤자 겁만 먹거나 더욱 더 낙심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잠시 물러서서 압박감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도록 기운을 복돋아주고 위로를 해주는 것이다. 그 일로 다시 돌아갈 에너지와 용기를 되찾을 때까지 말이다. 시간을 주라. 때가 되면 그들은 분명히 그렇게 한다. 무슨 놀이든 아이가 그걸 즐기지 않는다면, 미련없이 곧바로 그만둘줄 알아야 한다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일단 시켜놓고 시간이 좀 지나면 저절로 즐기게 될거야.‘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최고로 뛰어난 학생조차도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머리로 성벽을 부수려고 달려들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건 참으로 황당하고 무모한 짓이다. 그러한 때에 교사들은 학생들을 잠시 제지해서 앞뒤를 생각하게 하는 대신 오히려 더 마구잡이로 달려들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은 제대로 하는 법을 알지만, 순전히 재미로 틀리게 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아이들의 이런 감수성에 마주친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것을 꺾어버리고 싶어한다. 그건 심각한 실수다.  나는 오히려 내 어린 친구가 했던 그런 종류의 행동은 함께 즐기고 북돋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아이러니와 위트에 대한 감각이 별로 없고 사물을 다각도로 보는 능력도 그다지 발달되어있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또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틀리게 하기 장난은 바로 그런 종류의 유머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아기들과 놀이를 하는 단하나의 훌륭한 이유는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과, 함께 놀이를 함으로써 느끼는 즐거움을 나누는 것뿐이다. 우리가 그 놀이를 하는건 즐겁기 때문이다. 만약 그 즐거움 대신 미래 IQ지수와 수능점수에 대한 냉정한 계산을 집어넣는다면, 우리에게나 아이에게나 놀이를 죽이는 일이 된다. 선생님은 학급의 똑똑한 아이들과 덜 똑똑한 아이들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면서 똑똑한 아이들은 아주 의도적으로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시행착오의 과정을 선택적으로 이용한다는 의미였다. 다시말해, 그 아이들은 알고 싶은 것을 알아내는 방법으로 시행착오를 의식적으로 활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겐 궁금한 게 있다. 그 아이들이 똑똑해서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똑똑해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