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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 존 홀

아이들에 관해 배우기

아기들은 하잘 것 없는 존재로 취급 받았으며, 시간이 지나야만 진지한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된다는 것이 옛날 사람들의 견해였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주 어린아이들의 세계관, 힘, 능력, 학습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가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떻개 세계를 인식하고 어떻게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자라고 배우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어떤 두뇌 연구자라 할지라도 실험의 일부로 간단한 임무를 주었을때 사람들이 그 임무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굉장히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딴 생각을 아주 많이 할 것이다. 살아서 움직이는 정신은 매초마다 수십만, 아니 수백만 개의 정보를 처리한다.  미국 생물학자 밀리센트 와쉬번 쉰은 1900년에 ‘아기의 일대기’를 쓰게 되었는지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에 관한 연구는 대개 아동기 후반인 취학 연령을 다루고 있는데 거의 항상 통계적인 방법을 이용한 것으로 실제 살아 있는 아이 개인의 이야기는 아주 적다.  반면 나는 아기의 행동을 정기적으로 기록하는 방법으로 유아기를 다루었다.  아기의 발달을 날마다 관찰하면서 그 결과를 기록한 것이다...  물론 한명의 아이를 통해 고찰한 사실에서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낸다는 것은 대단히 주의를 요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많은 점에서 비슷비슷하며, 어느 것이 일반화 될 만한 사실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유아기는 인류라는 종에 공통된 어떤 거대한 힘이 발달하는 아동기 후반과 비교해서 개체간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은 시기다. ....’

 

라잉은 자신의 책 '생명의 진상'에서 어떤 여자가 철학과 교수에게 던진 질문을 인용한다. '만약에 내가 더 이상 존재가치를 느끼지 않는다면, 어째서 자살해서는 안 되나요?'  그녀는 분명 기계와 다른 그 이상의 무엇을 가르키는 의미에서 '존재'라는 단어를 썼다. 아이들 자체와 그들이 배우는 법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 우리가 배우는 법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그것과 관계가 있다. 특히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존재를 느낄 때 비로소 능력을 다해 배울수 있고, 또 자기가 뭘 배우고 있는지 드러낼 수 있다. 사랑과 존중심, 믿음에 가득 찬 어른들이 함께 할 때 그 배움은 진정 꽃을 피울 수 있다. 반면 생명을 기계로 보는 이론가나 분석가들, 경험을 조작하려는 잔재주꾼들은 단지 아이들을 인위적인 행동으로 몰아간다. 세상엔 아이들을 보는 두 가지 잘못된 점이 있다. 하나는 길을 들여 복종시켜야만 할 사악한 괴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프로그램을 잘 돌리면 천재로 만들수 있는 두발 달린 조그만 컴퓨터로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