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戒 老 錄 소노 아야코

오욕투성이일지라도 꿋꿋이 살아가라.

노년은 인간의 일생 중 연속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이런 모습을 총괄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면 인생도 노년도 파악할 수 없다.  헨리 제임스의 초로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있다  그야 그렇지, 살패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 살아간다는 것은 실패해 간다는 말이거든” 노년은 반드시 지나야 할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노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노년만을 따로 떼어 문제로 삼는다면 거기서 인간은 자기를 상실하고 노년의 절망과 분노가 생겨난다인간의 일생을 하나의 시간의 경과로 보지 않고, 어떤 시기만을 별개로 집어내어 문제를 삼는다면, 무능한 노인이 참혹한 취급을 받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인간의 일생에서 성장기가 필요하듯 인간 정신의 완결을 위하여 차차 사라져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준비한다해도 우리들은 머지 않아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되며 모든 기능이 악화된다. 막상 노년이 도래하면 나는 단지 한가지 태도밖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그 한가지는 '오욕투성이 일지라도 살아가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얼굴도 삶의 하나의 상태이고, 눈도 귀도 멍해지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고통에 괴로워하는 것 역시 인간의 하나의 상태인 것이다인간다운 존경심과 능력을 모두 상실한다 해도 인간은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일생은 부질없는 헛수고의 연속이다. '죽음'이란 최종 목표가 눈에 보이는 인간에게 헛수고라 필요없는 것이라고만 한다면 처음부터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건강, 행복 그런 것들은 모두가 눈가리개에 지나지 않는다. 시련과 질병으로 인해 비로소 눈가리개를 벗고 자신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늙음을 경험하는 것도 이미 완쾌 될 가망성이 없는 병과 싸우는 것도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의 하나임은 분명하다生과 死는 늙음의 어느 한 시기에 갑자기 그 농도가 짙어진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는 개개인의 몫이다. 그것을 잘 수습하여 넘어서면 좋겠지만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다고 해서 특별히 어떻다는 것도 아니다인간의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실제로는 의외로 극히 적다.  처음부터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이 게으름을 피울까봐  어른들은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엄포를 놓을 뿐이다.

 

어느 순간 생명은 나의 눈 위로 마지막 장막을 드리우고 묵묵히 떠나 갈 것이다. 그래도 예전과 다름없이 별은 밤이 새도록 빛나고 아침이면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시각각 바다의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기쁨과 괴로움을 주리라헤어짐의 순간에는 친절한 말을 듣고 싶다.  그리고 내가 베푼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며 감사하고 싶다.

 

만년에 꼭 기억해야 할 네가지는 '허용, 납득, 단념, 그리고 회귀'를 생각한다. 이 세상의 모든 선과 악은 나름대로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허용이며  내 자신에게 일어난 여러가지 상황에 정성을 다해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이 납득이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신의 의지를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것에서 보고자 하는 노력이다. 갈망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것은 어떠한 인간의 생애에도 있으며, 그때 집착하지 않고 슬그머니 물러날 수 있는 것이 단념이다그리고 회귀란 사후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가 결코 원하지 않았으나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 살아오는 동안 비일비재 했고, 그것은 내 자신이 책임지려 해도 이미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내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을 실감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나와 관계 있는 사건의 결과에 조차도 책임지려 들지 않는다. 

 

오늘날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저녁식사로 빵 한 조각을 얻는 것은 위대한 행복을 차지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호강에 젖은 아이에게 버터도 없는 빵 한 조각을 저녁식사로 주게 되면 불만과 비참함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풍요로워지면 질수록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그만큼 불만을 품은 노인도 늘어날 것이다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벌거숭이로 태어났다. 지금 내가 뭔가를 지니고 있다면 위대한 은혜로 생각해야 한다노년의 행복은 이런 판단이 가능한가, 하지 않은가이다 노년의 행복은 자신의행복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발휘해야 할 기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