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戒 老 錄 소노 아야코

보살펴 주는 사람에게 감사할 것, 죽음

자식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가운데 언쟁이 있거나 하면 그렇다면 내가 나가마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양로원에 갈 생각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노인은 실천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어쩌다 한번 만난 노인에게 사람들은 어떤 말도 할 수 있다. 입으로는 어떤 약속도, 어떤 자상한 말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매일 노인을 보살펴 온 것은 며느리다.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 그러한 붙임성 있는 소리를 일일이 할 수 없다노인들 중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의 좋은 점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좋은 점이란 하나도 없고 나쁜 점만 가슴에 사무친다. 물론 일반 서민생활에서 나무랄 데 없는 노후를 보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병들어 자리에 누우면 보살펴 주는 연고자도 없고 돈 한푼 없는 노인과 비교하면 그래도 나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식의 집에서 살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것은 상대에 대해 실례가 되는 태도다. 하기야 그렇게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자식이라도 아무리 노인이라고 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서 참고 살아야 한다정말 나갈 마음도 없으면서 들으라는 듯이, '이런 집구석에 있다는 것은 견딜 수 없다'고 하는 노인이 있다. 비위 긁는 말만 하는게 아니다. 자신이 얼마나 냉대 받고 있는지를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에 하소연하고 싶어하고, 가출을 한다든지 자살을 기도한다든지 동네를 배회하기도 한다. 어떤 것도 자신의 본심과는 관계없다. 인간으로서 비겁한 행동이다. 분명히 말해서 노인도 생애를 마칠 집은 자식의 집이고 그 이외 타인은 보살펴 줄 이유가 없다는 정도의 냉정한 판단을 하는 것이 좋다같이 살고 있지 않는 둘째 며느리가 낫다고 생각하며 같이 살고 있는 맏며느리를 멀리 해서는 안된다. 날마다 돌보아주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자연히 서로의 단점을 보이게 된다. 매일매일 늘 자상하게 대하는 것도 인간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어쩌다 한번 와주는 조카나 둘째 며느리가 훨씬 좋아 보이게 된다 그러나 헌신적으로 노인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병원이나 양로원 직원이며 맏며느리다.

 

하루 정도라면 누구도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계속해서 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껴야 한다.  노인이 되어서 최후로 자식에게 혹은 젊은 세대에게 보여 줄 것은 사람이 어떻게 죽는가 하는 죽음에 대한 자세다훌륭하고 의연하게 죽는 것이 최상이다.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이며 또 살아남아 앞으로 죽음을 맞이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다죽음에 대해서 너무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사후 일을 걱정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부담이다. 죽음의 유일한 장점이란 그땐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뼈가 어디에서 어떻게 되건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 묘지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자식 세대에게 절망도 가르쳐야 한다. 밝은 희망만 전해주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일생동안 사회를 위해서 처자를 위해서 훌륭하게 활동해온 사람이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든지, 혹은 머리가 이상해져서 이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상한 행동을 하든가 하면 참담한 종말이겠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삶의 방식임에 틀림 없다.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노인은 더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막상 일을 시키면 싫어하면서도 일할 곳이 없다는 등 불평을 해서는 안된다. 일을 하고 싶기도 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싶기도 하고 이런 것이 장년이든 노년이든 사람들 마음속에 많은 부분을 차지 하는 것은 아닐까일반적으로 말해서 일할 곳이 있고 일할 능력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면 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인을 일하게 하는 것은 체면 깍인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사회로부터 은퇴시키는 가족도 있으나 그것은 잔혹한 일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사회적으로 막중한 책임을 갖는 직위에서는 노인 스스로가 물러설 줄 아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

 

육체적 노동과 더불어 두뇌의 노동도 실로 중요하다. 육체보다는 뇌의 노화가 빠르게는 40대부터 시작되는 사람을 가끔 본다. 기억력이 나쁘다든지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린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다. 회의 등에 참석해서 큰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사소한 것에 고집을 피우거나 혹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관심하든가 속 좁은 행동을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억지로라도 자신의 입장을 상대에게 인정하게 하려 든다가정주부는 책을 읽지 않게 되고 연구심이 결여되며 끈기가 없어지고, 쉽게 남의 소문을 믿으며 그것을 화제로 삼으려 한다. 두뇌를 단련시키는 최상의 방법은 끊임없이 갈등, 저항에 자신을  놔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쾌한 생각을 체험하는 것이다. 가정은 이런 면에서 방파제 안과 같아 도리어 나쁜 환경이다. 주위 사람으로부터 불쾌한 일을 당하게 되어 화가 치밀어 오른다면 마음으로부터 감사할 일이다. 그만큼 심신에 활력을 주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