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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허버트 스펜

진화하는 교육

어린이는 성숙할 때까지 스스로 학습해야 한다는 원리와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신활동은 유쾌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성에서 복잡성으로, 구체성에서 추상성으로 진행된다는 추상적 심리작용의 필수조건을 감안해야 한다. 지식은 스스로 즐겁게 터득해야 한다는 필수조건은 심리작용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판단하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학습자가 스스로 알게된 지식과 스스로 해결한 문제는 탐구를 통해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 두뇌의 예비활동과 그에 필요한 집중력 그리고 성취감에서 느끼는 희열은 정보를 각인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습득한 지식을 끊임없이 조직할 수 있어야 그런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함양한 지식과 추론은 또 다른 결론의 전제가 된다. 어제의 문제를 풀이한 해결책이 오늘의 문제를 익히는데 도움이 된다고나 할까.  따라서 지식은 일단 머릿속에 들어오면 개인의 능력이 되어 사고력에 보탬이 될 것이다. 난관을 극복하는 용기, 시행착오를 거친 집중력과 인내력은 장래의 중요한 특성이자 교육제도가 만든 특성이기도 하다.

 

미국 교육행정가 호러스만 은 ‘ 안타깝게도 현행교육은 훈련보다는 말이 너무 많다. ’라고 지적하는 한편 마르셀은 ‘학습자는 귀로 들은 지식보다 머리를 써서 밝혀낸 지식을 더 잘 알게 마련이다’ 라고 꼬집었다. 우리가 지향하는 자기계발 방안이 본질적으로 유쾌한 활동, 즉 외적보상 때문이 아니라 본질이 건실해서 기쁨을 느끼는 활동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는 점도 주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마음이 꽂힌 상태에서 읽거나 듣거나 본 것이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한 것보다 더 잘 기억된다는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학습자가 탐구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른바 지적 무관심은 결과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 때문에 문제를 더 키우기도 한다. 이를테면 두려움과 불안감이 집중력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애당초 거부감이 드는 지식에 머리를 써야 하는 고통은 증폭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디 인상에 휘둘리기 쉬운 존재다. 매일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적을 만들고, 남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은 미움을 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아이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탐구의 쾌감을 맛보게 하고, 성과에 맞장구를 쳐주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임스 필란스교수는 ‘ 어린이가 바람직한 방법대로 배우면 놀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 때도 즐거움을 만끽할 수있고, 지적에너지를 바른 방향으로 발산하면 체력을 쏟을 때 못지않게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육을 자기교육과정으로 만들고, 유쾌한 교육과정을 지향해야 하는 이유가 한가지 더 있다. 학교를 졸업해도 교육을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학업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면, 부모와 교사의 강요에서 벗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고통스런 기억을 연상시키는 장소와 대상은 거부하고 즐거운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분이 좋아진다면,  고통스런 수업은 지식에 혐오감을 더하고 유쾌한 수업은 지식의 매력을 더할 것이다. 어릴적부터 수업이 따분했던 사람을 비롯하여 체벌의 두려움에서 벗어난적도, 스스로 탐구하는 습관을 기른적도 없는 사람은 몇해가 지나면 학업을 포기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대로 적절한 시기에 학업을 쌓고 지식에서 재미를 느끼며, 장기간 성취감을 만끽해 본 사람이라면 소싯적 시작한 자기교육을 훗날에도 이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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