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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허버트 스펜

개념에서 실용으로(2)

현재 우리는 자연의 안내를 외면하고 잇다. 신기한 꽃을 꺾고, 곤충을 관찰하고, 조약돌과 조개를 모으는 아이가 느끼는 쾌감보다 더 큰 희열이 어디 있겠는가? 무기질 같은 단순한 특성을 섭렵한 아이라면 같은 과정의 일환으로 일상에서 만나는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는 단계,  즉 식물의 색상, 개체수와 꽃잎의 형태, 줄기, 잎사귀 모양을 비롯하여 곤충의 날개, 다리와 더듬이 숫자 및 색깔 등을 파악하는 단계로 이행해야한다. 아이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지식은 모두 입에서 쏟아내고 싶어 할 것이다. 생명의 법칙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 즉 생명 법칙에는 신체와 정신이 모두 포함될 뿐 아니라, 넓게는 집과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와 모든 상업과 정치와 도덕까지 아우르므로 생명 법칙을 충분히 섭렵하지 않으면, 개인및 사회활동을 바르게 규제할 수 없다는 점은 차차 밝혀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아이가 현장에서 지식을 배우도록 돕고. 유년기동안 그 과정을 장려하는 것이 아이 스스로 장래를 위한 원재료를 비축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연이 수년간 주목하라고 강조해온 과정을 마침내 교사가 도입했다는 점이 주목해 봄직하다. 아이들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집, 나무, 동물을 그린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아이에게는 모방하려는 심리가 있어 스스로 그림책을 만들어 보겠다는 욕구가 머리를 들게 마련이다. 뭔가 색다르다 싶은 대상을 묘사하려고 애쓰는 것은 본능적인 인지력 훈련으로 관찰력의 정확도와 완성도를 높이는 촉매가 된다. 또한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의 특성을 발견하고, 이를 묘사함으로써 아이는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을 호소하고 있는 셈이다. 관심이 가는 실물을 표현하려는 본능을 끊임없이 장려해야 한다. 자주 쓰이는 대상에 일단 관심이 가면 아이는 그것도 종이에 담으려 할 것이고, 이를 모방하다 보면 그림이 점차 실물에 가까워것이다. 모양새가 엉망이고, 색깔이 실물과 맞지 않고, 채색이 서툴더라도 장려해야 한다. 핵심은 아이가 훌륭한 작품을 그려내느냐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배양하는데 있다.

 

언어의 네 영역과 기능을 훈련함으로써 말문을 틔우려는 관습은 실제로 걷기에 앞서 다리의 뼈와 근육과 신경을 자세히 가르쳐주는 격이고, 물체를 그리는 법을 가르친답시고 선의 정의와 학명을 밝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것들은 혐오감을 일으킬뿐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다. 그런 탓에 공부가 싫어지는 것이다. 원래 교육은 실습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습득하는 것이다. 아이가 사전을 들춰보지도 않고도 주변에서 들리는 대화로 우연히 어휘의 뜻을 파악하듯,  과학적 용어 역시 물체와 그림 혹은 직접 그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힘들이지 않고 되레 즐겁게 익힐 수 있다. 그림을 기계적으로 따라 그리는 어리석은 학습은 버리고 단순하면서도 관심이 가는 방법을 채택한다면, 추상적이 아닌 합리적 사고력을 기르고 대상을 나타내는 선에 익숙해 질뿐 아니라, 그리기 실력도 차근차근 늘어날 것이다.

 

기하학은 장인을 비릇한 전문가가 건물의 기반이나 울타리로 둘러싸인 영역 등을 정확히 측정한 데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모형집을 만들기 위해 종잇장을 잘라내고, 채색할 장식의 밑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아이가 옛날의 건축가처럼 스스로 만들어 보는 편이 교육에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지식습득이 늘 재미있고  인류의 계몽이 시작된 때와 같이 아동도 조기에 계몽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껴야 한다면, 과학은 미술의 도우미 역할을 할 때만 관심을 끌 것이다.  아이는 무언가 만들기 위해 시도때도 없이 종이를 자르려는 성향이 강하다. 격려와 지도편달을 바르게 해주면, 아이는 과학적 개념을 체득하기 위한 길을 닦는다.  아이들은 대개 부족하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다루는 능력을 계발하려고 한다. 관찰력과 창의력으로 필요한 역량을 함양하고 나면, 경험적 기하학을 배울 차례다교육이 모두 그렇듯 경험적 기하학 또한 정형화된 틀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지되, 미술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 유지해야 할 것이다. 판지로 사면체를 만드는 것은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할뿐 아니라 교육의 편리한 출발점이 된다. 복잡한 문제를 접하게 되더라도 아이는 제3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고민해 가며, 그것을 해결하게 될 것이다.

 

무미건조하고 강요로 배운 지식도 자연의 순리를 따른다면, 재미와 유익이 극대화 될 것이다. 유익이 극대화 된다고 말한 까닭은 아이가 기하학지식을 습득할뿐 아니라, 지각을 통째로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수업을 비롯하여 추상적 공식, 피로감을 증폭시키는 과제와 주입식교육으로 머리가 마비된 아이들이 수동적 수업을 탈피하고, 적극적으로 탐구하게 된 덕에 돌연 지각이 활성화 되었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몹쓸 교수법이 낙심을 부추겨 공감을 제지하고,  아이들이 첫 과제를 풀어내는데 인내력을 소진 하면서 기존교육에 반감이 생겨났다.  스스로 문제를 풀어내고 좌절감에서 벗어나 뭐든 정복할 수 있어리 라는 용기가 생긴 아이는 다른 과목의 난제에도 도전한다.  그들은 잘 훈련된 기량으로 향후 마주하게 될 문제를 무난하게 학습할 것이다. 아동의 인지력은 단순한 수준에서 복잡한 수준으로, 구체성에서 추상성으로, 경험에서 합리로 진행된다. 두뇌의 자율활동을 촉진시키고, 자연스레 발달에 보탬이 되는 식으로 자연의 순리를 완벽히 도입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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